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기원 (문단 편집) === [[인조반정]] === [[광해군]]이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고, 재위 5년(1613) [[계축옥사]]로 조정 안팎이 뒤숭숭해졌다. 궁궐 증축 및 토목 공사가 잦고 매관매직 등 혼란이 발생하자 [[신경진]], [[김류]], [[이귀]], [[김자점]], [[최명길(조선)|최명길]] 등은 광해군의 패륜을 이유로 들며 반정을 일으켰는데, 당시 유생이었던 심기원 역시 동참하였다. 반정군은 군사 2천여 명을 이끌고 [[창의문]]으로 진격해 성문을 부수고, [[창덕궁]]에서는 미리 포섭된 훈련대장 이흥립(李興立)이 내응해 궁궐 문을 열어준 덕에 궁궐 안으로 진입했다. 광해군은 반정군이 궁문을 부술 때 사다리로 담을 넘어 달아나[* 이 때 반정군이 횃불을 잘못 버려서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 건물이 타고 말았다.] 의관(醫官)[* 의료에 종사하던 관료]이었던 안국신(安國信)의 집에 숨었다가 결국 붙잡혔고 반정은 성공하였다. 직접 뛰어들어 반정군을 이끈 보상인지 몰라도 심기원은 정육품 형조좌랑(刑曹佐郞)에서 정오품 [[사헌부]] 지평(地坪), 정삼품 동부승지(同副承旨) 순으로 연달아 승진하다가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