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상우 (문단 편집) == 생애 == 1938년 5월 7일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부]](現 [[광주광역시]])에서 아버지 심만택(沈滿澤, 1908. 2. 7 ~ 1953. 4. 11)과 어머니 [[탐진 최씨]](1905 ~ 1952. 6. 23)[* 최덕원(崔德元)의 딸이다.] 사이의 4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수창초등학교|광주수창국민학교]](27회), [[광주서중학교]](29회), [[광주제일고등학교]](2회), [[미국]] 몬타나 주립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전남대학교/학부 및 대학원|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68년부터 큰형 심상하가 호남전기(훗날 로케트전기) 회장이 되자 그는 사장이 되었고, 1970년 심상하 회장 사후에도 사장 직위는 유지하였다. 1971년부터 둘째 형인 심상수와 함께 전 사주인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광주일보|전남매일신문]]을 인수받아 1980년 언론통폐합 전까지 부사장(1971~1973)과 사장(1973~1980)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 호남전기의 실세인 형수 진봉자 여사와 심상수 회장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imiz2&logNo=1013531183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갈등]]으로 심상수는 호남전기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그도 사장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후임 사장으로 21세의 조카 심홍근이 앉았으나, 경험 미숙과 경영권 분쟁, 방탕한 생활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고 1977년 8월 9일에 강릉 옥천해수욕장 부근 개울에서 [[http://www.joongang.co.kr/article/1465388#home|자살하였다.]] 결국 호남전기는 1976년부터 호남 연고기업 14개가 인수했지만, 1978년부터 초창기 6주주들 중 하나인 전남일보(= 광주일보) 사주 남봉 [[김남중(언론인)|김남중]](1917~1987)이 경영권 경쟁의 승자가 되었다. 다행히 경제개발 및 유가, 외환, 금리의 3저호황 국면을 활용해 다시 번성하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해외 유명 브랜드와 중국산 저가 건전지에 시장을 잠식당했고, 1998년에 로케트 상표권과 판매권을 질레트에 넘긴 뒤 하청업체로 전락하다 2015년 2월에 회사가 정리되어 사라졌다. 반면 자회사 진해전지는 1978년에 세방기업에 인수되어 '세방전지'가 되었다.][* 70년대에 호남전기의 경영권을 "자의반 타의반" 내려놓은 일부 유지들이 전북의 주요 전지업체 후원을 시작, 회사가 본격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1972년 1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전라남도 광주시 제6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1980년에 전남매일이 언론통폐합으로 전남일보와 합쳐져 생긴 [[광주일보]]의 명예회장을 맡은 그는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광주)|동구]]-[[북구(광주)|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임재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3월 민주정의당 당직개편에서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는데 지금이야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서로 분리된 직책이지만 당시에는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겸해서 즉 '''대통령 = 여당 총재'''였기 때문에, 권력은 대통령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말도 있듯이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총재 비서실장은 여당 내에서 꽤나 무게있는 요직이었다. 심지어 영남 정권에서 심상우가 호남 출신 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사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계 각국에서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이면 다 있는 직책이지만, 당 총재 비서실장은 좀처럼 보기드문 자리로 전두환 정권 때 신설된 직위이다. 하단에도 나와있지만, 심상우 비서실장은 평소 유머가 풍부하고 따라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매우 능숙한 사람이었는데, 전두환이 이렇게 실력과 유머감각을 모두 갖춘 심상우를 높이 평가해, '''전례가 드문 직위'''에 임명하면서까지 곁에 가까이 두려 한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총재 비서실장 영전 7개월 후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을 버마 순방에 수행하였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하였다, [[향년]] 45세.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심상우의 사망 후 고인이 생전 닦아온 터전들 중 일부는 유가족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가로챈 경우도 있어, 유가족들의 슬픔이 더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