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쌍수도 (문단 편집) === 중국 군사도법 === 검술로써의 쌍수도의 기원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중국의 병법서 육도삼략을 기원으로 삼는 쿄하치류(京八流,경팔류)를 배운 스님 넨아미 지온(念阿弥 慈恩)이 중국에서 온 신승 영우에게 중국검술과 밀교 비전을 전수받아 창시한 넨류(念流)의 14명의 제자, 넨류십사철(念流十四哲)중 한명인 사루 고젠(猿御前)이 창시한 카게류(陰流)에서 시작된다. 사루 고젠에서 시대가 흘러 카게류의 창시자로 여겨지기도 하는 [[아이스 히사타다]](愛洲久忠)는 세토 내해 지역에서 활약한 가문으로, 세토 내해의 호족은 해적질을 겸업으로 삼고 있었으며, 아이스 히사타다 자신도 검술을 배우기 위해 명나라, 조선까지 다녀왔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왜구 활동을 좋게 포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왜구들이 카게류를 배워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척계광이 1561년 신유년에 왜구와 대전을 벌여 압승을 거두고 진중에서 노획한 카게류 전서를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된다. 척계광은 1561년 승리를 거두고 얻은 카게류 전서와 왜구의 검법을 바탕으로 왜구의 오오타치를 모방한 병기와 도법을 제정하였고, 그것이 바로 기효신서에 수록된 [[카게류]] 전서와 15가지 세법이었다. 그러나 기효신서에는 그림 하나에 세법 이름 하나만 달랑 써놓아서 도대체 무슨 기법인지, 어떻게 훈련했는지 전혀 단서가 없었다. 카게류 전서는 그동안 초서체로 흘려써서 내용 판독이 안되었으나, 일본에 보존된 아이스카게노류 전서와 비교해서 1번형 엔삐(猿飛), 2번형 엔카이(猿廻)의 내용은 판독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나머지 9개 형은 그림만 남아있어서 같은 넨류에서 발생한 츄조류의 카타 해설서인 병법수경의 기법을 통해 추정하고 있다. 오히려 조선의 [[무예제보]]에서는 다행히도 낙상지 등에게 직접 배워 15가지 세법을 해설하고 그것을 연결하여 연습하는 명나라 군대의 훈련투로가 수록되어 척계광 군대에서 어떻게 수련했는지 알 수 있다. 중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며, 안개에 싸인 명나라 도법의 구체적인 동작도 무예제보번역속집 왜검보, 본국검, 제독검 등을 통해서 식별이 가능하다. 이 무예제보의 훈련 세법이 효종 대 병조판서 김좌명의 기효신서 조선판에서의 변개를 거쳐 무예도보통지까지 계속 이어진다. 또 척계광 군대에서는 한달에 15일 훈련하고 3일 무술, 1일 진법, 1일 평가하는 체계였는데 모든 병력은 원거리 병기인 원기(遠技)와 근접전투술인 단예(短藝)를 각각 시험보았으며, 단예는 각각 자유롭게 동작을 혼자서 시연하는 무(舞) 그리고 2명이서 대련하는 대(對) 두가지로 나뉘어졌다. 이 둘을 합쳐서 무대(舞對)라고 불렀다. 장도는 목검으로 둘이서 대련했으며, 공격이 계속 이어져 상대가 반격도 못하면 상등(上等)으로 판정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기효신서 수전편을 보면 참마도라는 무기가 나타나는데, 쌍수도, 당파를 부를 때와 같이 백방기를 세우면 소집되는 점이나, 척계광 군대에서는 월도, 청룡도를 사용하지 않은 점, 북방으로 파견된 후 연병실기에서 말다리와 말머리를 베는 기법을 "왜도의 기법대로"라고 말하여 대 기병무기로도 쓴 점을 보아 쌍수도의 이명으로 추정된다. 참마도의 평가방법은 창을 상대로 싸워 이기는 것이며 창의 현란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정확히 들어오는 한 공격만 잡아서 이기면 상등(上等)으로 판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당파의 평가 방법과 같다. 특이하게도 삽화를 보면 오른손이 칼날을 잡고 있는데, 왜구나 일본군은 오오타치를 빠르고 섬세하게 쓰기 위해서 손잡이 앞쪽의 칼날에 천이나 새끼줄을 감고 그곳을 잡고 쓰기도 했으며, 현재도 카게류와 신토류를 배워 신카게류를 창시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조카였던 히키타 분고로의 유파 히고 신카게류에서는 지금도 거대한 오오타치에 천을 감아 거기를 잡고, 갑옷을 입고 시연하는 행사를 보여준다. 기효신서를 보면 칼날 104cm에 21cm를 황동으로 감으라고 규정하였으므로 아예 임시방편이 아닌 정규 제식으로 왜구들의 방법을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써보면 칼날에 비해 손잡이가 31.5cm로 너무 짧아서 손잡이만 잡고 쓰면 돌려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쓰기 힘든데, 황동으로 감싸진 칼날 부분을 잡고 쓰면 짧은 칼을 쓰는 것처럼 빠르고 세밀하게 쓸 수 있다. 훗날 민간무술가인 정종유(程宗猷, 1561 - ?)가 1621년 출판한 경여잉기(耕余剩技)에 수록된 단도법선(單刀法選), 오수(吳殳, 1611 - 1695)가 1678년 출판한 수비록(手臂錄)의 단도편(單刀編), 조선의 무예제보번역속집 왜검보,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 제독검을 보면 명나라 군사 도법이 어떤 형태였는지 판별된다. 향전격적(向前擊賊)은 칼날이 아래에 있다가 돌려서 내려치는 기법이다. 일본에서 흔히 보여주는 상대 검을 받아흘리고 돌려서 내려치는 동작과 같다. 진전살적(進前殺賊)은 돌리지 않고 그대로 수직으로 들어올렸다가 검도처럼 뛰쳐나가며 뻗어치는 기법이며, 휘검향적은 올려베기를 하며 나아가는 기법, 그리고 무예제보 검보에서 나타나는 일자(一刺)는 뒤집어 오른쪽으로 찌르고 재퇴방적으로 이어지는 것 하나뿐이지만, 단도법선을 보면 초퇴방적, 삼퇴방적에서 나오는 찌르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수는 눌러서 썰어버리는 삭(削)은 원래 없었고 군대에서는 벽(劈:수직내려베기)와 감(砍:대각선베기) 딱 두개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쌍수도 투로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일치한다. 이것을 보면 쌍수도는 내려베기 2종, 올려베기 1종, 찌르기 4종에 불과한 아주 단순한 도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투로에서 향전격적을 하고 삼퇴방적으로 바꾸는 동작은 카게류1번형 엔삐와 동일하고, 삼퇴방적을 하고 물러났다가 오른쪽, 왼쪽으로 향전격적을 하는 것은 카게류2변형 엔카이와 같아서 최대한 카게류 전서를 반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처음에 지검대적세에서 향좌방적세로 내리는 동작은 신카게류 엔삐 카타에서 상대의 베기를 칼 옆면으로 내려쳐버리는 동작으로 나타난다. 향상방적세는 일본에서 유파를 불문하고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이런 점을 보면 쌍수도 투로는 생각 외로 최대한 왜구의 도법을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에서 명나라 무술을 전수하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던 참장 낙상지가 전수한 제독검을 보면, 쭉 전진했다가 물러나고 다시 전진하는 투로의 구성이나 사용하는 단어는 쌍수도와 똑같으며, 단도법선의 속도세 12세 중 일부와 공통되는 기법이 나타나며 주로 수평베기를 위주로 한 도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낙상지는 북방기병 체계의 군대를 이끌던 이여송의 측근이었지만 낙상지 자신의 군경력 대부분은 척계광 체계로 돌아가는 남병이었고, 척계광의 6가지 백병전 무술을 전수한 것도 그 자신이었다. 이것을 보아 제독검이라 불리온 투로는 올려베기, 내려베기밖에 없던 쌍수도를 보완하고자 수평베기 위주로 만들어진 제2투로라고 볼 수 있다. 쌍수도는 명나라가 멸망한 후 만주족 지배하의 청나라에서도 한족 군대 녹영(綠營)에서 척계광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살아남았다. 오히려 더 발전하여 다섯가지의 각기 다른 길이의 파생형으로 분리되었는데 이중 쌍수대도, 장인대도, 참마도는 칼날을 잡느니 손잡이를 길게 만들자는 발상으로 손잡이가 길어져 나가마키와 같은 무기로 변질되었다. 특히 직계 후손으로 추정되는 쌍수대도는 칼날 길이가 84cm대이지만 손잡이를 1주척 21cm정도만 줄이면 정확하게 기효신서 쌍수도의 스펙과 맞는 105cm정도의 칼날 길이가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군대에서는 민간의 단도술과 별개로 쌍수도술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으나, 민첩하게 싸우기 어렵고 무조건 돌려쳐야만 하는 것은 무기로써 약점이므로 이 부분이 결국 칼날을 줄이고 손잡이를 늘이는 것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명나라 군사 쌍수도법은 남아있지 않으며, 민간에 남은 묘도법은 그 기본기나 형태로 보아 정종유의 단도법선에서 파생된 도법이다. 오히려 군사 도법의 복원 및 재현은 무예제보를 비롯해 명나라 군사 도법의 단서를 보유한 한국에서 무예도보통지 복원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서는 조선군사사료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대부분 단도법선의 복원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