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군 (문단 편집) == 아군과 적군 == 설령 아군이라 해서 최종적 목표까지 같은 건 아니다. 최종목표가 다를 경우 이 아군은 언제든 잠재적인 적이 될 수 있다. [[적과의 동침]], [[동상이몽]], [[하라구로]], [[흑막]], [[배신]], [[뒤통수]],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등의 용어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다는 건 누구나 잘 알기에, 향후 [[배신]]이 우려되는 상대방에게 어디까지 협조할 것인가의 문제는 [[게임 이론]] 등에서 이미 많이 논의되기도 했다. 이처럼 세상에는 백 퍼센트 아군도 적도 없게 마련이지만, [[진영논리|세상 만사를 아군과 적군으로 깔끔하게 무 자르듯이 나누는 사고방식도 있다]]. 즉 ('''우리''' - 아군 - 선함 - 도덕적 - 합리적 - 인간적) vs. ('''그들''' - 적군 - 악함 - 부도덕 - 비합리 - 인간 이하) 의 심리적 구도를 만드는 것. 이러한 이분법(二分法, dichotomy)은 주로 깊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따져 볼 심리적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심리적으로 고민이 많고 욕구가 불충족되거나 했을 때 마일드한 방식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런 사고방식이 만성화된 사람들은 애초에 이만큼 단순한 세계가 아니면 받아들일 힘조차 없는 것.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미 [[사회심리학]] 및 정치심리학에서 마르고 닳도록 논의되어 왔다. 조금 씁쓸하지만 이처럼 아군과 적군을 명확히 나누어 보여주는 것은 [[정치]]적 메시지로서도 아주 그만이다.[* 예시: 지금 [[미국]]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악의 축]]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도 이런 구호를 많이 접할 수 있다. 물론 [[근본주의]] [[종교]] 집단 역시 [[영적전쟁|빠질 수 없다]]. 이런 메시지들은 모두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비록 남들의 눈에는 심각하게 엇나갔을지언정) 일종의 [[피아식별|피아식별띠]]가 되어주는 것이다. 반대로 정치판에서는 일명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 논리, 즉 뜻을 같이 하는 아군이라면 아무리 물의를 빚고 지탄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보듬어주고 못본 체 해주어야 한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이는 단지 '''우리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집단의 썩어있는 환부를 제때 도려내지 못하게 해서 다같이 실권을 잃고 굴욕을 겪는 등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군이니까 [[실드]]쳐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군이니까 그만큼 엄격하게 통제하고 기강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독일의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피아식별(彼我識別, Freund-Feind-Unterscheidung)에 있는 것이라는 식으로까지 주장하기도 하였다.[* 쉽게 말해서, 종교적인 것의 본질이 성속(聖俗)의 구별에 있고, 도덕적인 것의 본질이 선악의 구별에 있듯이,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동지(Freund)와 적(Feind)의 구별에 있다는 논리.] 크게 보자면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은 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내 생존에 필요한) 아군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때 아군이라 함은 "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의 격언에 해당될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타고난 [[성격]] 등의 이유로 일부는 "저 사람은 적이 없는 사람이야" 같은 평판을 얻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일부는 사회적인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라도 자신을 물고뜯을 준비가 된 적들이 사방에 우글거리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