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니메쥬 (문단 편집) == 역사 == 1978년 5월 16일 창간되었으며 잡지명은 영어「animation」과 프랑스어「image」의 일본식 발음인 아니메이숀+이마쥬 = '''아니메쥬'''. 작명가는 1대 편집장이었던 오가타 히데오(尾形英夫)이다. 남들이 착상을 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전부터 회사의 명물 괴짜 편집자'로 유명했는데, 아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회사 돈으로 애니메이션 전문잡지 창간을 결행한다. 6개월동안 잡지의 창간 준비를 하던 중 부하직원과 대판 싸우고 그를 홧김에 짤라버렸다. 그리고 전부터 친분이 있던 아사히 예능부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스즈키 토시오]]를 부편집장으로 불러온다. 당시 오카다는 《아사히 예능》편집장도 겸임한 상태여서 스즈키 토시오가 실질적인 잡지의 편집장 역할과 잡지의 운영을 맡게된다. 초창기 편집부 직원은 스즈키를 포함한 6명. <테레비랜드>라는 저학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서 별책 [[우주전함 야마토]] 특집을 편집한 직원들이 모체가 되었다. >[테레비 랜드]라는 잡지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사히 예능》의 기획부장을 지내고 《아니메주》라는 애니메이션 잡지의 창간을 준비하던 오가타 히데오라는 사람이 회사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나를 불러냈다. 편집자는 모두 셋집에 살던 시대에 일찌감치 자기 집을 사는 등 여러모로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아니메주》를 맡으라고 말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외부 프로덕션과 함께 준비해왔는데 결국 싸우고 갈라섰어.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야 하는 날까지 이제 2주밖에 안 남았네…….” >애니메이션의 ‘애’자도 모르는 내게 애니메이션 잡지를 만들라니. 더구나 직원도 없다고 한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애원하며 쉽게 놔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원고는 어떻게 하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여고생을 세 명 소개해줄 테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며칠 뒤 그가 소개해준 여고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는 사이에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철완 아톰|우주소년 아톰]]」이나 「[[에이트맨]]」을 보지 않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특정 캐릭터에 열광하고 그 캐릭터를 그린 만화가를 만나러 가기도 한다. 즉,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이돌이 된 것이다. 창간호는 118쪽이었다. 창간호의 발행이 성사되었지만 스즈키도 오가타도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잡지에 어떤 기사를 실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애니메이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편집부에 찾아와서 드나들던 [[오타쿠|아니메팬]]들이었다.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참신한 로봇 아니메]]가 시작한다. 취재를 하고 싶다고. 그에게 맡긴 취재 기사 초고를 보고 스즈키는 놀랐다. 애니메이터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전개될 스토리 예고, 각종 알찬 정보로 가득했다. 스즈키는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니메쥬는 이런 식으로 아니메팬이 직접 취재를 해서 아니메팬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맞춤형 정보를 담은 잡지가 되었다. 창간호을 만들 때도, 기획 회의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여고생 3명을 불러서, 창간호에 어떤 기사를 싣는게 좋을지 물어보면서 잡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리즈 기획으로 '지난 애니메이션 다시보기'라는 제목의 과거의 아니메를 재조명 하는 코너를 만들었는데 이 여고생들이 비범하게도 그 첫 대상으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입을 모아 추천했다. 해당 기획의 취재를 위해 [[스즈키 토시오]]는 이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후일담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여담 항목 참고) 창간호의 가격은 대부분의 잡지가 200엔 하던 시절 580엔의 고가였음에도 7만 부가 3일 만에 완판되었다. 곧 《아니메쥬》는 인기 잡지가 되어 월 15만 부에서 30만 부 씩 발행하는 잡지로 성장했고 전성기에는 40만 부씩 찍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90120905|#]] 그런데 [[스즈키 토시오]]가 개인적인 친분으로 이토록 대단한 애니메이터이자 감독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 특집 기사로 31페이지를 실은 1981년 8월호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 했고 40만부를 찍어 발행해서 20만 부가 반품되어 돌아왔다. 일반 대중은 물론 애니메이션 팬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그가 누군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던 때의 일이다.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어떤 작품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장면을 그렸는지까지 알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터로는 여러 번 잡지에서 소개되었지만 감독으로서는 기껏해야 1978년에 [[미래소년 코난]]과 1979년에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감독한 무명의 감독이었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였다. 그 이전에는 [[토미노 요시유키]]와 [[오시이 마모루]]보다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잡지 특집을 꾸린 것은 당시 독자가 느끼기로는 잘 나가는 잡지에서 갑자기 신인 영화 감독을 두고 이 사람은 거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뜬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파일:external/auctions.c.yimg.jp/ntkurukuru-img600x450-1416112971tn34mg13897.jpg]] <만화영화의 마술사 [[미야자키 하야오]] 모험과 로망의 세계> 스즈키 토시오 외에 유명한 인물로는 [[오구로 유이치로]]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