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마데우스(영화) (문단 편집) == 실제와 영화의 차이 == * 실제 인물 [[살리에리]]는 영화 속에서처럼 컴플렉스에 찌들 사람이 아니었다. [[모차르트]]와 경쟁관계에 있었다고 하나 모차르트보다 나이가 많은 만큼 이미 그 명성이 전 [[유럽]]에 떨쳤고 음악가로서 지위도 확실했다. 3개 국어를 배워 오페라를 쓸 정도로 전 유럽에 인기가 있었다. 물론 사후에는 빠르게 잊혀져서 수백 년씩 기억되는 모차르트와 비견할 바는 못 되지만[* 근데 이게 일반인이나 통용되는 거지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살리에리는 대부분 안다. 아니,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유별나게 유명한거지 거장으로 불리는 음악가 중 일반인에겐 비교적 생소한(예: 부조니, 사티, 바르톡, 쇤베르크)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둘도 음악이 자주 쓰여서 부분부분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지. 그러니까 살리에리도 현재까지 대우받는 음악가다.], 작곡 능력으로서는 당대 기준으로는 무시당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7xz7qTrlI|그가 작곡한 곡]]을 들어 보자.[* 살리에리가 궁중음악가여서 대중의 명성이 적었다는 것은 오류다. 바로크는 엄연히 한 시대를 풍미한 클래식의 한 장르이며 헨델도 궁중음악가였는데 유명하지 않은가.] * 늘그막에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제자 모셀레스에게 밝힌 살리에리의 말에 의하면 "모차르트와 꽤 사이가 나쁜 건 사실이지만, 그를 죽게 하는 일에 끼어든 적은 없다"고 털어놓는데, 모차르트와 사이가 나쁜 건 비단 살리에리 뿐만이 아니었다. 모차르트와 동시대의 음악가들 중에서 그와 사이가 좋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모차르트의 성격은 너무나도 괴팍했다. [[https://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465519601|사교적인 측면에서]] 살리에리가 다양한 음악가들와 두루두루 어울리며 덕망을 쌓은 반면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이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을 자신의 곁에 두었다. 모차르트에 묻혀진 편이지만 그래도 살리에리보단 지금도 많이 알려진 대선배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는 모차르트에 대하여 "비록 음악의 천재이지만, 나머진 천하에 둘도 없는 둔재"라고 깠을 정도[*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황실 궁내상서에게까지 글루크는 2000 굴덴을 받는데 난 600 굴덴밖에 못 받는다고 징징거리다가 욕을 거하게 쳐먹은 적도 있다. 글루크는 당대 유명 음악가에 모차르트보다 무려 42살이나 나이가 많은 대선배고,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25년 넘게 일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당시 20대의 애송이에, 황궁 음악가로 갓 들어온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받은 연봉 600굴덴도 웬만한 고위 공직자 수준이다.]. 도리어 살리에리는 궁정 음악가였던 당시에 후배 음악가들을 위해 자선 연주회를 열어주고, 그들을 후원하는 등 훌륭한 선배 음악가였다. 돈 욕심도 별로 없어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슈베르트]] 등 수많은 유명 음악가들을 무료로 가르친 대인배였고,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조차도 살리에리에게 음악을 배웠을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성격이 괴팍한 [[베토벤]]도 살리에리를 존경했고, 그의 늘그막 시절 모차르트를 죽게 했다는 소문에 대하여 강력하게 부정했으며, "그래도 책임은 있는 거 같다"는 그의 비서-쉰들러의 말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며 "그분은 그런 짓할 분이 아니라고 난 굳게 믿는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을 정도였다. * 더불어 영화는 살리에리가 자살을 기도하고 정신병원에서 폐인이 되어 죽어가는 걸로 나오는데, 이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살리에리는 죽기 직전까지 궁정악장을 지내면서 윤택한 삶을 누렸다.[* 영화에서도 살리에리가 궁핍하게 사는 것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호화로운 저택에 하인들도 있고, 하인들이 당시로썬 귀했을 크림과 빵을 간식으로 대령한다. 정신병원에서도 다소 깨끗한 독방을 쓰는 등 잊혀졌지만 부는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늘그막에는 잊혀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영화에 묘사된 살리에리의 말년은 그저 ~~[[명예훼손]]~~픽션에 불과하다. 생을 마감할 당시에도 외동딸 입회 아래에서 당시로선 엄청나게 오래 산 나이인 75살로 편히 눈감았다. 다만 정신병원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노인이 앓게되는 질병인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갔던 것은 사실이고, 또한 이때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고백을 몇 번 하기도 했다. 치매 노인이 한 말이니 깊이 분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모차르트 사후, 워낙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사체에 붓기가 있었기 때문에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이 아니냐는 루머가 계속해서 돌았고 그에 의한 피로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숨을 거둘 때는 다행히 정신이 온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독살설을 부정했었다. * 다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불화 및 모차르트의 요절 등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게 만들었다는 루머로 번져나갔고, 세월이 지나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곡(1830년) 및 [[러시아]] 음악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Mozart et Salieri)〉(1898)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인 것으로 설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희곡)|아마데우스]]〉(1979)가 영화화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그런 루머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정작 살리에리 본인은 늘그막에도 모차르트나 그의 유족들에게 사죄한 적은 절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며,[* 영화에서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원작인 희곡을 보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 탓에 자책하고 자살 시도를 한 것이 아니다. 극 중 평생 명성을 갈구한 살리에리가 죽어서도 '모차르트의 살해자'라는 '명성'을 얻고자 한 일이었다.] 모셀레스에게 털어놓은 말을 봐도 생전에 모차르트를 죽게 한 범인으로서 뒤집어 쓴 누명을 참으로 억울해했다. *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부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입도 위치도 불안정했던 모차르트가 궁정 음악가라는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으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렸던 살리에리를 부러워 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 ~~자신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성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으니 더 그랬을지도~~ 가족관계에서도,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평생 독신인듯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살리에리는 결혼도 일찍했고, 자식들도 8명이나 되었다. 정말로 모짜르트에게 꿀릴게 전혀없는 삶을 산게 살리에리다. * 영화 속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서도 과장된 면이 있다. 그는 즉흥적으로 음악을 작곡해나가는 스타일이었다기보단, 오히려 분석적이고 신중하고 노력하는 면이 돋보이는 음악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KBS 스펀지 등에서 주사위를 던져 작곡했다느니 하는 등의 얘기로 인해 더 왜곡된 이미지가 퍼져버렸다. 물론 주사위를 던져 작곡했다는 에피소드 자체는 ''''[[음악의 주사위 놀이]]'''(Musikalisches Würfelspiel KV 516f)'에 관련된 실화. 자세한 건 음악의 주사위 놀이 문서 참조. 또 사실 작중에서도 모차르트는 단순히 천재일 뿐 아니라 노력도 굉장히 많이 한다는 점도 부각된다.[* 묘사가 어물쩡하게 나와서 그렇지, 사실 모차르트의 아내가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가 밤낮으로 쉴세없이 악보를 쓰며 일한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살리에리에게 고용된 하녀가 모차르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리에리에게 보고할때도 저녁때 까지는 꼼짝않고 악보를 쓰고만 있다는것으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 2016년에는 [[https://www.yna.co.kr/view/AKR20160217061500009|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공동작곡한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가 발견되어 둘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