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베노믹스 (문단 편집) == 배경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_UafzhHzmwE)]}}} || || 2013년 3월 26일, Japan: What is Abenomics?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1980년대의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물론 10년이 넘어서도 일본의 장기불황은 지속되어 잃어버린 20년이 되어버렸고, 어쩌면 잃어버린 30년을 맞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 일본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3차 산업이 저물어 가고 4차 산업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데도 이에 대한 대응책이 없었던 것이 타격이 컸다. 특히 4차 산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IT 분야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전환을 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예전부터 정보화 사회로의 변환을 예측해 이에 대한 준비와 기간 산업 육성에 전력을 기울여 왔던 대한민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일본은 기존의 경제 구조와 산업 구조에만 집착해 이를 더욱 향상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21세기의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 기기, 스마트폰 같은 IT사회의 필수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인프라마저 경직되고 열악한 상황이다.][* 당장 4G에서 5G로 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세계와는 다르게 일본은 이에 대한 개발이나 인프라 개설이 매우 더디다.]이였다. 여기에 2011년에는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사상 최악의 재앙까지 만나면서 일본이 휘청거린다는 말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슈퍼엔고까지 겹치면서 일본의 [[경상수지]]는 날이 갈수록 하락했고 전자업계를 위시한 수많은 수출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해 줄초상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자민당에서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던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은 이런 난국을 타개하는데 실패하면서 국민들의 민심은 등을 돌렸고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이 정권을 재탈환하면서 일본 경제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아베 신조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비둘기파 중에서도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여기서 말하는 비둘기파는 흔히 쓰이는 외교적 온건파를 뜻하는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91%98%EA%B8%B0%ED%8C%8C|비둘기파]]가 아닌,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려 시중에 돈을 풀자는 ‘완화파'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반대로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일 때 기준금리를 인상해서 시중에 퍼져 있는 통화를 거둬들이고 물가를 안정시키자는 ‘긴축파’는 매파라고 불린다. 경제적 매파의 주요 주자로는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를 [[일본은행]] 총재로 앉히며, 본격적인 아베노믹스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 [[다무라 노리히사]] 전 후생노동대신이라고 한다.[[https://logmi.jp/business/articles/683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