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브라함 (문단 편집) == 생애 ==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온 일족을 이끌고 고향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도시 우르케시딤(אוּר כַּשְׂדִּים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다. 아버지 데라(תרח, 테라흐)와 다른 친족들은 중간 지점인 하란에 남고, 아브라함과 롯의 가족만 가나안에 들어왔다가 기근이 들자 [[이집트]]로 떠났는데 아내 [[사라]]와 남매로 위장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사실 이복 누이가 맞긴 하다.]] >"더구나 그 여자는 정말 나의 누이입니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달라서 내 아내가 되었습니다." >---- >[[창세기]] 20장 12절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사라를 빼앗기면서 자기 목숨을 잃을까 봐 이런 비겁한 짓을 한 것이었고 아내를 [[파라오]]에게 맥없이 빼앗기고 만다. 이에 하느님이 파라오의 집에 저주를 내리자 파라오는 아브라함을 불러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질책을 한다. 그 후 나중에 그랄왕인 아비멜렉 앞에서도 똑같은 일을 저지른다.[* 나중에 이사악도 아비멜렉과 거의 같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같은 전승이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전승되다가 창세기에 함께 실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비멜렉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져서 이때 사라가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밝힌다. 동시에 이를 달리 설명하면 하느님이 선택해서 쓰는 사람이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악하며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그 믿음을 의로 여기고 쓰신다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칭의 또는 의화를 대표하는 예 중의 하나이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와 네게브 지역에 거주했는데 롯과 땅 문제로 분쟁이 일자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를 요청하여 롯은 [[소돔]]으로 떠나고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 다섯 나라의 왕들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 엘람어와 아카드어로 기록된 문헌들이 발견됨에 따라, 그돌라오멜을 두고 원래 '구두르라가말'이 그 이름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라가말은 엘람족의 여신으로, 아슈르바니팔이 그 존재를 언급한다. 그돌라오멜은 '부하'를 의미하는 '구두르'와 '라가말'이 합쳐진 꼴로 '라가말의 부하'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대영박물관에 소장중인 기원전 7-6세기의 기록인 [[https://en.wikipedia.org/wiki/Chedorlaomer#Identifying_the_kings|Spartoli Tablets Collection]]에서 구두르나훈테 2세(Kutir-Nahhunte II)를 구두르라가말로 기록하고 있다. 수칼마흐 왕조의 구두르나훈테 1세 (Kutir-Nahhunte I) 역시 구두르라가말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시날 왕 암라펠로 추정되는 함무라비와 함무라비의 아들 삼수-일루나와 동시대 인물인 까닭에 구두르나훈테 1세가 그돌라오멜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사실상 엘람이 성서 속 묘사대로 메소포타미아의 절대 권력 중 하나로서 군림했던 것은 구두르나훈테 1세와 그의 삼촌 시웨팔라르후파크(Siwe-Palar-Khuppak, 기원전 1778-1745년)가 통치하던 기원전 18세기가 유일하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시웨팔라르후파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강한 왕이었으며, 마리의 짐리-림(Zimri-Lim, 기원전 1775-1761년), 바빌론의 함무라비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왕들이 그를 섬겼고, 마리의 짐리-림과 바빌론의 함무라비는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국가인 에쉬눈나(Eshnunna)를 정벌하였다. 그의 치세 동안에만, 엘람이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에 광범위하게 간섭하며 전령과 사신들을 시리아의 에마르(Emar)와 카트나(Qatna)까지 먼 서쪽으로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가나안의 하솔(Hazor)까지 사절단을 보내고 가나안 지역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던 마리 왕국이 시웨팔라르후파크의 치세 동안 엘람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마리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가나안도 마리와 마찬가지로 엘람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Kenneth Anderson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Wm. B. Eerdmans Publishing, 2003, p. 321.][* 실제로, 당시인 엘람의 시웨팔라르후파크의 치세 동안 엘람의 사신은 에마르(Emar)에 이르러서, 그의 세 명의 종들을 카트나의 왕 아무트-피엘 2세(기원전 1772-1762년)에게로 보냈었고, 카트나의 왕 역시 엘람으로 두 명의 전령들을 보냈었다. ][* Charpin, Dominique (2010). Writing, Law, and Kingship in Old Babylonian Mesopotamia. Translated by Todd, Jane Mari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SBN 978-0-226-10159-0. p. 124.]을 섬기다가 배반해서 그돌라오멜이 시날 왕[* 암라펠(아무라피일)은 함무라비(아무라피)를 히브리어로 음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시기적으로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기원전 1792-1750년)를 의미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므라벨"은 "함무라비-일"이라는 이름으로, "함무라비는 (나의) 주님이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를 고려한다면, 함무라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국가의 왕이나 함무라비의 왕조 내의 후대의 왕을 가리켰을 수도 있으며, 그돌라오멜이라는 이름이 엘람 왕 시웨팔라르후파크나 바빌론 왕 함무라비 보다 후대의 왕인 구두르-나훈테 1세(c. 1710 BC)를 가리키는 이름이기에 암라펠은 구두르-나훈테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함무라비의 아들 삼수-일루나를 가리킨 이름일 수도 있다.], 엘라살 왕[* 엘라살의 왕 아리옥은 라르사의 왕으로 추정되어왔는데, 엘라살은 라르사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오기된 것으로 본다. 아리옥은 라르사의 왕 중 함무라비와 동시대 인물인 림-신 1세(영어판)의 이름을 아카드어로 번역한 에리-아쿠라는 의견 또한 제시되었는데, 이는 림-신의 림은 아카드어로 에리로 발음되는 종을, 신은 아카드어로는 아구/아쿠로 발음되는 달신의 이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아리옥은 마리 문서에서 함무라비와 동시대 인물인 짐리-림의 부하로 언급되는 아리욱(Arriwuk)으로, 엘라살은 같은 시기의 마리 문서에서 일란-수라(Ilan-Sura)로 언급되는 마리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사해 문서의 라멕 계시록/창세기 외경(Genesis Apocryphon, col. 21)에서는 아리옥을 카파토키아(Kappatuk; Cappadocia)의 왕으로 기록한다.], 고임 왕[* 고임 왕 디달은 히타이트 신왕국의 초대왕 투드할리야 1세(기원전 17세기)나 히타이트 형성 이전의 투드할리야왕의 오표기로 보기도 한다.][* 사해 문서의 라멕 계시록/창세기 외경(Genesis Apocryphon, col. 21)에서는 고임을 메소포타미아 내에 있었던 국가로 기록한다. 학자들 중에는 고임이 구티움(구티족)을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Walton, p. 39).]과 함께 다섯 왕을 싯딤 골짜기에서 무찌르고 소돔과 고모라를 약탈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롯도 이에 휘말려 포로가 되었다.[* 나라 수만 세면 5:4지만, 엘람과 바빌로니아는 고대 근동의 손꼽히는 강국인 반면 저 다섯 왕은 사해 근처의 성읍국가들에 불과했다.] 아브라함은 동맹인 아모리인 마므레, 에스골, 아넬 형제와 손잡고 엘람 연합군의 뒤를 추격해 롯과 그 가족과 재산을 구출해냈다.[* [[수메르]]의 기록에 이것과 매우 흡사한 전투가 기록되어 있으며 거기서 활약한 사람으로 '''데라의 아들'''까지 언급하고 있으므로 전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이때 돌아오는 길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10분의 1을 주었는데, 이것이 [[십일조]]의 시초로 여겨진다. [[야훼|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하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말렸으나[* 처음에 감히 여호와 상대로 흥정을 했다. 의인 5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이 염치없게 자꾸 빌어서 50명에서 겨우겨우 10명까지 깎였지만 [[롯]]의 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타락한지 오래라 이미 구원하기 틀렸었다.] , 하느님은 [[롯]]을 탈출시키고 두 도시를 멸하는 것으로 조치를 취했다. 천사가 탈출하면서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탈출하는 과정에서 롯의 처가 두고온 자신들의 재산이 아까워서인지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다. 훗날에 두 아들을 두는데 큰아들은 86세에 얻은 첩 [[하갈]] 소생의 아들 [[이스마엘]], 작은 아들은 100세에 얻은 본처 [[사라]] 소생의 아들 [[이사악]]이다. 그 후 아이들이 성장하자 [[야훼|하느님]]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하여[*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성경]]에서는 [[이사악]], [[쿠란]]에서는 [[이스마엘]]을 바치려 한다. 그러는 와중에 하느님께서 그의 상당한 믿음을 알고 천사를 보내서 그를 제지하고 대신할 제물인 흠 없는 숫양을 준 뒤[* 여호와 이레(주님께서 준비하신다.)가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다. 야살의 책에서는 최초의 숫양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많은 자손과, 그 자손들의 축복, 그리고 그 자손들의 나라에게도 축복을 해준다.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죽자, [[헷]] 사람들에게 자신은 외부인이자 나그네일 뿐이라 아내를 묻어 주기 위한 땅을 팔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위대한 지도자이며,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은 아무도 막지 않는다며 좋은 땅을 아무 곳이나 골라 써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부탁하여 막벨라 동굴을 팔게 해 달라고 한다. 마침 헷 사람들과 함께 있던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동굴이 있는 땅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줄 테니 장사를 지내라고 크게 소리친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절을 하고는 땅값을 받아야 아내를 묻을 수 있다며, 에브론이 마다하는데도 굳이 땅값을 치르려 하고, 에브론은 은 사백 세겔을 받고 마므레 동쪽의 막벨라에 있는 밭을 팔아 주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곳의 동굴에 아내를 묻었다. 이 동굴은 그 후 아브라함 집안의 가족묘가 된다.[* 그 후 이 동굴에는 사라에 이어, 아브라함, 이사악과 그의 아내 레베카, 야곱의 첫 부인 레아와 야곱이 순서대로 묻혔다. 야곱이 사랑하던 둘째 부인인 라헬의 무덤은 베들레헴 외곽에 있다.] 아브라함은 종손녀 리브가를 아들 이사악의 아내로 맞이하게 한 다음[* 아브라함이 사망할 당시의 나이는 175살. 이삭이 60살에 에사우와 야곱 형제를 낳았으니 이 들의 소년기 때까지는 함께한 셈이다.], 새 아내 그두라를 맞아들였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이사악에게 주었고, 죽기 전에 다른 아내의 아들들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동쪽으로 보내어 이사악과 멀리 떨어져 살게 했다. 아브라함은 175세의 나이로 평안히 살다 죽었고, 이사악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사라가 묻힌 막벨라 동굴에 묻어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