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시리파 (문단 편집) == 특징 == 아버지가 사냥꾼이고 남자 형제가 없어서 여자임에도 사냥에 끌려다닌 덕분에, [[홋카이도]]의 생존기술과 사냥에 아주 해박하다. 이 기술을 이용해 [[덫]]을 깔아 추적자를 잡은 사례가 몇 번 있다. 외지인인 스기모토에게 길잡이로서 이런저런 사냥법과 생존기술을 알려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활 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서 작은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데에도 능하다. 또한 홋카이도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인 [[불곰]] 사냥도 특기에 가까울 정도로 익숙하다.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 아시리파의 아버지는 한술 더 떠 불곰의 굴에 [[독극물|독]]을 발라둔 화살만 가지고 들어가서 불곰을 찔러 죽일 정도로 대단한 사냥꾼이었다고 한다. 다만 뱀을 엄청나게 무서워해서 뱀이 나오면 평상시의 대담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패닉한다. 그림 솜씨도 괜찮아서 문신 죄수를 죽여 가죽을 벗기기보다는 그림을 베끼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일본어[* 아버지가 폴란드-아이누 계열이고 날 때부터 아이누 공동체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본어는 아시리파의 모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코믹스와 애니에서 아시리파의 대사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다소 딱딱한 면이 있다.]와 아이누어 방언에도 능해서 아이누와 일본인의 통역도 담당하고, 오타루 외 지역의 아이누 방언도 문제없이 알아듣는 만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신 요리를 제외한 집안일은 서툴어서 싫어한다. 스기모토가 상대방이 '아시리파가 자수에 푹 빠져 있다'는 거짓말을 듣자마자 아시리파가 그럴리가 없다고 간파했을 정도. 아시리파 본인은 산행을 좋아하니까 상관없지만 외할머니는 집안 일 못하는[* 단순히 살림살이 하는 정도의 집안일이 아니라, 바느질, 돗자리 짜기 등 당시 아이누 여성들이 담당했던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일을 말한다. 당연하지만 보통 이런 일은 그냥 배운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꾸준히 연마해 시집갈 무렵까지 터득하는게 일반적이다. 즉 아시리파는 여인이지만 사내처럼 자란 셈.] 아시리파는 아이누 남편을 구할 수 없을 것이기에 스기모토에게 아시리파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통역 담당인 아시리파는 살짝 얼굴이 붉어지며 이 대사를 '똥 먹지 말라'고 일부러 오역한다.] 스기모토에게 아이누식 다진 [[육회]]인 치타탑을 먹이거나, [[뇌]]나 눈알 같은 그로테스크한 걸 먹이면서 "우리네 식문화에 뭔가 불만이라도?"라는 등, 자신들의 식문화에 자부심이 강하나, 스기모토의 된장을 가리켜 똥[* 아이누어로 오소마라고 부른다.]이라 지칭하는 등, 타인의 문화를 인정하는 부분은 부족한 면모를 보인다. 다만 식탐이 강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된장과 카레를 맛보고 그 맛에 뿅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된장을 다른 아이누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는 오소마'라며 권하기도 한다. 미소녀로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비교해서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으로 묘사된다.[* 또한 눈이 짙은 파란색에 녹색이 약간 섞인 특이한 색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아시리파가 [[혼혈]] 핏줄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아이누는 혼혈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는 편이었다고 한다. 후에 밝혀진 설정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러시아 제국]]에 의해 극동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된 [[폴란드]]인이었다고 한다.] 다만 나이가 어리고 아이누 인이기 때문인지 키는 스기모토의 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파일:CiOQhfEUUAINm1C.jpg]] 그리고 미소녀지만 작품 특성상, 망가질 때는 처절히 망가진다.[* 보통 못 먹을 것처럼 생긴 것을 보거나 소녀 감성이 터졌을 때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얼굴개그]]의 화신. 체구는 작은데 홋카이도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아이누 전통 옷을 매우 두껍게 입고 다녀 옷 맵시가 굉장히 언밸런스해 보인다. 음식을 먹을 때 다소 지저분하게 먹는 편이다. 수달 오하우를 먹을 땐 얼굴에 수달 머리를 붙이고 먹었고, 날이 따뜻해져 다들 [[머위]]를 먹어 입 주변이 거무튀튀해졌을 때 아시리파는 얼굴 전체가 검댕이 되어버렸다(...).[* 1792년 쿠시하라 세이호(串原正夆)가 낸 에조치(蝦夷地; 당시 홋카이도를 이르는 말)의 기록인 <이온조쿠바나시(夷諺俗話)>에 의하면, 당시 아이누는 "백미를 흘리며 먹거나 (흘린 밥풀을) 줍지도 않고 밟고 다니거나"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인이 "백미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른다."며 불평했다고.] 그리고 10대 초중반의 어린아이지만, 미성년자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시대이다보니 술도 곧잘 받아마신다. 사실 곧잘 정도가 아니라 시라이시랑 스기모토랑 동급으로 퍼마시고 헤롱헤롱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