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누 (문단 편집) === 근대 === 1868년 [[에도 막부]]가, 1869년 [[보신전쟁]]을 통해 [[에조 공화국]]이 멸망하고 홋카이도는 완전히 [[일본 제국]] 치하에 들어갔다. 일제는 아이누를 구 토인(旧土人)이라고 불렀으며, 일본의 인류학자들은 아이누를 '인간의 덜 진화된 모습'으로 간주했다. 1899년 제정된 《홋카이도 구 토인 보호법(北海道旧土人保護法)》은 아이누인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말이 보호법이지 그 내용은 * 아이누의 토지 몰수 * 수렵 금지 * 아이누 고유 풍습 금지 * 일본어 사용 의무화 *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 등으로 [[민족말살정책|아이누 말살법]]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 홋카이도 개척 관련 법에 따라 아이누인에게 따로 농지를 나누어 주기는 했는데 수렵 생활을 해온 아이누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농사를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오랫동안 수렵생활을 해와 토지의 소유권 및 임대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던 아이누인들은 농사에 익숙한 이주 일본인들에게 농지를 빌려주다가 빈곤 문제로 농지를 팔거나 사기당하는 일도 잦았다. 결국 새로운 농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렵도 금지당한 아이누인은 빈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이누 여성들 또한 일본인의 첩으로 들어가 혼혈아를 낳아야 하는 참담한 역사도 있었다. 아이누 다큐멘터리 <당신은 아름답다>에서 보면 아이누의 후손들은 돌을 맞고 '''개'''라고 놀림받았으며[* アィヌ에서 ア를 빼면 イヌ(이누), 일본어로 [[개]]라는 뜻이 되는데 그걸 갖고 놀리는 거다.] 결혼이나 취직에도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 '사카이 미나'라는 아이누족 여성은 학창 시절 아이누라고 놀림당해 자신의 털을 상처나면서까지 깎아야했고, 아이누 노인의 말에 따르면 아이누인들은 일터에서 아이누어를 쓰다 걸리면 감독관에게 꾸중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일본 내 공교육에서도 아이누의 취급은 미묘했는데, [[홋카이도]] [[개척사]]를 다루면서 "홋카이도에는 사람이 없고 [[곰]]과 아이누만 살았다."고 황당한 서술을 해버린 탓에, 아이들이 아이누를 인간이 아닌 무슨 동물의 일종으로 알고 자랐다. 아이누의 비극적 역사에 관한 좋은 참고 자료로는 가야노 시게루가 쓴 '아이누 민족의 비석'이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은 주로 가족과 개인의 체험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보다 더 민족의 전체상을 다룬 내용을 원한다면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부제: 아이누와 식민주의)'라는 책도 일본의 아이누에 대한 폭압적인 식민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에서도 19세기 일본의 이른바 [[홋카이도]] '개척'에 의해 자신이 살던 땅에서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누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노다 사토루의 [[골든 카무이]]가 정발되는 등 일본 근현대사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아이누의 차별이 조금씩 재조명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