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제르바이잔/역사 (문단 편집) == 현대 == 이후 [[1922년]]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거쳐 [[1936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반소적인 성향이 강하였다. 80년대 말부터 반소 시위가 벌어졌고 [[1990년]] [[1월 19일]]과 [[1월 20일|20일]]에는 [[소련군]]에 의해 131–170명에 이르는 시민이 희생당한 '검은 1월(Qara Yanvar)'이라는 [[유혈사태]]를 겪었다. 이후 [[1991년]] [[8월 30일]]에 독립을 선언하였고, [[10월 18일]]에 [[소련]]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하였다. 옆나라인 [[아르메니아]]와는 1988년부터 1994년 동안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자주 무력 충돌을 벌였다. 이 무력 충돌은 결국 1992년 겨울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라는 전면전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전쟁의 여파로 인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앙숙이 되었다. 이 와중에서 양쪽 다 천여 명 가량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이거 가지고 아르메니아에게 니들도 똑같은 학살자라고 주장하고, 아르메니아인은 300만명 학살과 천여 명 학살이 동등한 범죄냐고, 그리고 학살은 니들도 했다고 받아치고 있다. 어차피 규모도 미미한 수준이기에 국제사회에서는 별 관심도 없다. 사실 이 당시 아르메니아는 미국의 엄청난 지원을 받았다. 1992년만 해도 아르메니아는 102억 달러라는 엄청난 미국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이스라엘]]과 비슷한 상황이다. 즉 미국에 이민간 아르메니아인들이 미국에 로비를 해서 이런 결과를 얻어낸 것. 사실 아르메니아인들은 [[유태인]] 다음가는 해외에서 성공을 이룬 민족 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렇게나 외국에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튀르키예의 [[아르메니아 대학살]]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고,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몹시 미묘하다. 그리고 후술하는 대로 이스라엘이 이젠 아제르바이잔과 매우 친해져서 아르메니아를 견제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는 반대로 이스라엘이 숙적으로 여기며 견제하는 이란과 아랍국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파일:external/s010.radikal.ru/3db2f112aeb0.jpg|width=400]]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하여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에게 이슬람 형제로서 도와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 [[독소전쟁]] 때나 쓰였을 [[인해전술]]이 부활한 것도 이 때. 연이은 패배에 아제르바이잔은 미국의 배후 탓이 크다며 반미 여론이 크게 일어나 아르메니아와 전쟁 중이던 [[1993년]]에 수래트 휘세이노프(Surət Hüseynov) 대령의 군부 쿠데타로 2대 대통령이자 친미 및 서구 정책을 취하던 [[애뷜패즈 엘치배이]](Əbülfəz Elçibəy)가 퇴진한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id=19930805006002&keyword=%C0%CC%B1%E2%B5%BF|이후]] 아제르바이잔 [[KGB]] 의장과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헤이다르 알리예프]](Heydər Əliyev)가 대통령이 취임하여 [[2003년]]까지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앨리예프 정권이 수립되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아제르바이잔은 뒤늦게 반격하여 아르메니아군을 물리치며 20% 정도나마 빼앗긴 영토 일부분을 되찾긴 했다. 그 뒤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건강악화로 물러난 이후 그의 장남인 [[일함 알리예프]](İlham Əliyev)가 집권하고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31011/58134969/1|관련 기사]]. 알리예프 정권 수립으로 [[러시아]]는 이제 아제르바이잔 눈치도 봐야 했고 아제르바이잔의 패배에 [[튀르키예]] 국경지대 [[나흐츠반]]까지 위험할 지경에 이르자 [[튀르키예군]]도 참전할 분위기를 보이면서 자칫하면 세계대전급으로 규모가 커질 수 있기에 러시아와 미국이 중재하며 일단 전쟁은 멈췄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비호를 받은 나고르노 카라바흐가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제적으로 전혀 인정을 못 받고 있는 [[미승인국]]이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2008년에 무력으로 영토를 되찾을 것을 다짐하는 등 아직 평화 정착과는 거리가 멀다. 덕분에 [[튀르키예]]와 혈맹이면서도 튀르키예가 아르메니아와 화해하려고 하면 가장 결사반대하여 두 나라를 낭패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2010년 두 나라의 화해적 제스처에 알리예프 대통령이 튀르키예 대사를 소환해 혈맹인 튀르키예가 이러면 실망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을 정도이다. 게다가 2008년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자 튀르키예는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공식승인하고 코소보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러시아 그리고 혈맹국가까지 까대고도 살아남는 진정한 강대국--- 2016년 4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양측이 [[아르차흐 공화국|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 지역에서 전투를 벌여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 큰 타격을 입히고 몇 지역을 점령한 상태이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4/02/0200000000AKR20160402067451088.HTML?input=1195m?3dbcc3d0|관련 기사]]. --탈탈털렸던-- 과거에 비해 이번 전투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이 [[아르메니아군]]을 약 120명 이상이나 사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경전체에 걸친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이다. 그나마 국제 사회 중재로 전쟁은 장기전이나 대규모로 커지지 않고 국경분쟁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아르차흐]]를 되찾는데는 실패했다. 20여년 전과 달리 이번 분쟁에 대해 미국은 은근히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메니아는 [[친러]] 정책이 강화되었고 러시아가 강력하게 지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20여년 전과 달리 [[반미]]적인 분위기를 많이 거두고 [[러시아어]]를 배제하고 미국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계 미국 정치인들이 로비하려고 해도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러시아가 경제 및 군을 여러 모로 장악한 현실에서 더 이상 친아르메니아적인 미국의 지원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아르메니아는 침묵했고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의 침략과 학살이 들어간 전쟁이라고 강력 비난했던 걸 봐도. 게다가 미국 정치, 경제, 문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유태인들과 이스라엘이 이젠 아제르바이잔을 배려하고 있기에 아르메니아계 미국 정치인들로서는 한숨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2009년에 3선 금지 조항을 폐지한 이후, 2016년에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는 개헌투표가 통과되면서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 따른 권력집중 우려도 나오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08708583|#]] 투표에서는 [[https://en.wikipedia.org/wiki/Azerbaijani_constitutional_referendum,_2016|29개 조항을 수정]]했는데, 단어를 좀 더 쉽게 수정하거나 구체화하는 정도의 개헌안 (2, 7, 8번 등)에서도 반대표가 7~9% 정도 나온 반면, '''대통령 연령제한 제거, 임기연장과 부통령제 신설 조항''' (각각 20, 21, 22번)만 반대표가 5~6% 정도 나왔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초안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것이 7월 18일인데 투표를 '''단 73일 후인''' 9월 26일에 실시했다. [[2016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충돌]]로 큰 규모의 전쟁을 치렀으나 러시아의 중재로 4일만에 휴전하였다. 2020년 9월 28일, 아르메니아와 본격적인 국경 분쟁이 또 다시 벌어져 [[아르차흐 공화국]] 측은 15명 이상 전사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후 아르메니아와의 국경 분쟁이 심화되어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발발하였고 결국 승리하였다. 종전협정 결과 빼앗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대부분을 되찾았다. 이어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회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완전 수복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후에도 국경지대에서 계속 아르메니아를 맹공했고, 버티지 못한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2023년 5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보전을 인정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https://armenpress.am/eng/news/1111461.html|#]] 사실상 [[아르차흐]]를 포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3년 9월 28일, 아르차흐 공화국 대통령 삼벨 샤흐라마냔(Սամվել Շահրամանյան, Samvel Shahramanyan)은 국가 해산 법안에 승인함으로서 2024년 1월 1일부로 아르차흐 공화국은 아제르바이잔에 흡수되어 소멸, 이로써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완전히''' 수복하게 되었다.[* 실제로는 국가 해산 법인에 승인한 다음 날 아제르바이잔 경찰이 아르차흐의 수도 [[한캔디]]에 입성했고, 이후 해당 공화국의 국기가 철거되고, 현지에서 후속 행정 업무를 함으로써 당초 알린 날짜보다 3개월 앞서 수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