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체 (문단 편집) === 아체 내전 === 1949년 아체는 인도네시아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일부가 되었으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주민인 바탁 족은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고 아체인과는 언어도 크게 달랐다. 아체인들은 소요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1959년 아체는 자치권을 가진 주가 되었다. 그러나 1968년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아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강해졌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결탁한 미국의 석유 회사가 아체의 석유를 착취해 갔다. 결국 1976년 하산 디 티로가 자유 아체 운동을 결성해 내전이 시작되었고 이 때 반군 진압 중 [[인도네시아군]]이 저지른 인권 유린이 문제가 되었다. 90년대 말 인도네시아의 정정 혼란과 함께 2002년 아체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분리 독립 운동을 펼쳤던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다. 이에 크게 고무된 아체 반군인 자유아체운동(GAM)은 아체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공세에 들어갔으나 동티모르에 이어 아체까지 독립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인도네시아는 대군을 동원해 강경진압을 강행했다. 2004년 12월 발생한 [[남아시아 대지진]]에서 가장 먼저 쓰나미가 덮친 지역이자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지역으로 희생자 중 절반 가량이 아체에서 발생했다.[* 지진의 진앙지가 아체 근처였기 때문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진앙지에서 수천km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도 초토화시킨 지진이었으니 바로 옆에서 고스란히 맞닥뜨린 아체는 당연히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이 지진의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아체 반군은 2005년 독립을 포기하고 정부와 협상하여 내전이 종결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0122677|#]]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아체를 '아체특별자치구'로 지정하여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아체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자유 아체 운동 세력이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동티모르는 변방에 섬의 영토도 작은 편이고, 곱게 분리 독립을 시켜도 실보다 득이 많았다. 하지만 아체의 분리 독립을 허용할 경우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 섬의 육지 영토와 인도양, 믈라카 해협의 영해 다수 절반을 상실하게 된다. 아체가 독립하게 될 경우 수마트라 섬이 독립국 아체와 나머지 인도네시아령 수마트라로 나눠질 가능성이 높다. 또 석유와 가스 등 아체 지역에 매장된 수많은 지하자원들과 지리적 요충지를 잃게 된다. 게다가 아체를 독립시킬 경우 인도네시아 내의 다른 수많은 민족들이 너도나도 독립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에 인도네시아가 입게 될 타격은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도네시아는 아체를 포함한 자국 내 분리주의 운동에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유지하며, 현재까지 독립에 성공한 지역은 동티모르 뿐이다.[* 심지어 이 [[동티모르]]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에 일방적으로 합병한 나라라서 독립의 당위성과 국제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이다.] 한편 아체 독립운동 반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외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와 앙숙관계인 [[말레이시아]]조차도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체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지 않았다. 또 여기에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가 아체 반군과 전쟁을 벌일 당시 항복 조건으로 아체 자치권 부여를 제시했으나 아체 반군 측이 분리 독립만을 앞세우며 타협 불가로 일관하는 바람에 분쟁이 장기화된 측면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