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파트 (문단 편집) === 중세 및 근대 === 10세기 이슬람국가 시대에 [[이집트]] [[카이로]]에는 7층 높이의 아파트가 많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수백명이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미나레트 (주로 이슬람사원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탑) 와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도시에 늘어서 있었고, 도시 주민의 다수가 그런 건물에 살았으며, 한 동에 약 2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11세기 기록에는 몇몇 아파트들의 높이가 14층에 달했다고 한다. 게다가 옥상에는 정원이 있었고, 정원에 물을 대기 위해 황소가 끄는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중동에서 특히 유명한 곳은 [[예멘]]의 [[시밤]]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도시는 "[[사막]]의 [[맨해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흙벽돌로 지어졌으며 5층에서 11층에 이르기까지 그 높이도 다양하다. 그 중에는 30m가 넘는 건물들도 있는데, 오늘날까지 흙으로 만든 가장 높은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파일:external/ameralwarea.files.wordpress.com/20080426mudbrick-houses-shibam-yemen-20052.jpg|width=100%]] || || [[파일:external/www.rsvandermolen.eu/shibam.large.jpg|width=100%]] || 근대적 아파트의 시작은 [[루이 14세]]의 치하의 17세기 [[프랑스]]의 수도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한 세대가 가옥 전체를 점유하는 전형적인 평면이 좁은 수직형 공간의 중세식 세장형(細長型) 주택이 주류였지만 점차 평면이나 층을 나누어 플래츠 형식으로 여러 세대가 임대하기 시작한 것으로 당시 기록에 따르면 1층 상가 위에 3개의 층을 다세대 주거로 사용하는 건물이 많이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유형은 18세기로 넘어오면서 발전하기 시작해, [[루이 15세]] 때인 1715~30년 사이에 건축가 빅토르 다일리가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 아파트와 비슷한 설계로 주택가들을 지어 성공적으로 분양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이러한 수평 공간의 주택은 프랑스보다 이탈리아가 더 앞선 편으로 이탈리아에선 이러한 주택을 리네아형 주택으로 불렸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926626|링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2564|기사]]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낸 때가 18세기 초로 19세기 초인 1820년경부터 그 수가 늘기 시작해 1840년경부터 아파트 건설이 부르주아의 주요 투자대상이 되면서 대규모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850~60년대의 오스망 재개발을 거친 뒤 새로 닦은 넓은 대로를 따라 세워지기 시작해 지금의 파리의 풍광을 만들어냈다. 그 밖에 [[리옹]]이나 [[마르세유]]같은 지방의 대도시와 유럽 각국의 몇몇 대도시에서도 아파트가 세워졌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이다. 후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동서로 갈라지면서 각각 모더니즘 양식과 소련식 아파트로 재건되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인구 과밀로 인한 교통난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아파트의 층수는 보통 5~8층으로 파리의 경우 고도제한이 가장 긴 시간 동안 20미터를 유지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5층이 많다가 나중에 6층이 가장 많이 지어졌고, 고도 제한이 풀리면서 인구 증가와 함께 부동산 투자에 따른 이윤 창출의 압박이 커지는 것과 [[엘리베이터]]의 발명과 도입으로 6~8층으로 높아졌다. 동시에 모더니즘이 태동하기 전까지는 석재로 된 [[건축 장식]]을 활용해 외관을 마감했다. 파리의 아파트는 임대료를 기준으로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누어져있으며, 3등급은 중산층을 위한 것이며, 1~2등급은 신흥부르주아를 위한 고급형이었고, 오스망 재개발 이후 대로를 따라 들어선 아파트들은 석재 장식으로 마감한 고급형이 주를 이루었고, 이후 [[벨 에포크]]를 거치면서 네오 바로크와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하고 웅장한 아파트가 대세를 유지했다. || [[파일:Blv-haussmann-lafayette.jpg|width=100%]] || 파리의 아파트는 로마의 [[인술라]]처럼 계층별로 각각의 층을 사용했는데 그에 따라 임대료는 달랐다. 1층은 상점이나 관리인 가족들이 상주했고, 2층은 우리 말로 로열 층에 해당하는 좋은 층(bel etage)라고 불렸고, 엘리베이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좋은 층에다가 지면으로부터 떨어져 있기에 프라이버시가 보호되고 전망도 좋으면서 걸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높이로 임대료가 가장 비싸기 때문에 주로 아파트 소유주가 살거나 아니면 부유한 사람에게 임대되었고, 대개 2층 전체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3층부터 임대료가 싸지기 시작해 중간 수준의 부르주아들이 살았고, 4층부터 2~3층에 비해 임대자의 소득에 따라 분할되어 프티 부르주아들이 살았고, 지붕 아래의 공간인 다락방의 경우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도시 상공인, 독거노인들이 사는 공간이었다. 이런 방을 프랑스어로 chambre de bonne(하녀방)이라고 부르며, 현대에도 대학생이나, 파리의 높은 월세를 감당 못하는 사람들이 거주 하고 있다.[* 옥탑방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지만, 이 다락방도 겨울엔 춥고, 여름에는 태양의 직사광선으로 달궈져서 찜통이 된다. 실제로 오래전인 유럽 폭염 사태 당시 이 다락방에 거주하던 노약자들 상당수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