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락사 (문단 편집) === 찬성 === 치명적인 부상, 질병, 장애를 겪고 있는 개인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에서도 대책 없이 자기 이상만 늘어놓고 삶은 소중한 것이라며 방치하는 것은 독선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나서서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고통을 경감시켜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일단 살려두고 사회가 나서서 보살피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위선]]일 뿐이다. 안락사와 자살은 다르다. 이미 다양한 자살 방법이 있음에도 안락사가 요구되는 이유는 죽을 권리가 아닌 '덜 고통스럽게 죽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암에 걸려 고통스러운 삶을 버티지 못한 [[탑건(영화)|탑건]]의 영화감독 [[토니 스콧]]은 자살했으며,[* 한계점을 초과한 절망이나 고통을 겪으면, 이전에 아무리 일생 동안 성공한 삶을 살았더라도 상쇄되지 않는다.] 미 공군 조종사이자 변호사였던 도날드 코와트는 가스 폭발 사고로 눈과 손을 잃고 전신 [[화상]]의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화상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3도 이상의 화상이라면 [[마취]] 없이 탄 부위를 긁어내야 한다. 어디까지 신경이 살아있고 죽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마취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맨살을 칼로 긁어내는 고통을 치료 내내 겪어야 한다. 이 경우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의사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를 원했지만 의료계는 거부했고, 결국 끔찍한 고통을 대가로 71세까지 [[장수]](2019년 사망)하게 된다. 그는 치료 이후 댁스 코와트로 개명하고 성공한 사업가로 활동했음에도 죽는 날까지 환자의 권리(연명 치료 거부, 안락사) 운동가로 살았다. 댁스 코와트는 그의 다큐멘터리와 여러 강연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투약 상태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이 동작할 수 있음을 알리는 일에 힘썼다. 극한의 고통에 처한 환자가 죽여달라는 것은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안락사 반대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코와트는 환자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전통의 의료 윤리, 생명 윤리에 대해 재고하게 했다. 최선의 치료에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않는 [[시한부]] 환자의 경우, 연명치료로 고통받는 시간을 늘리기보다 가족과 이별의 시간을 가진 후 안락한 임종을 맞이하길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204335|"남은 삶 무의미"…국민 76%, 안락사 입법화 찬성]]] 이들은 자신의 연명보다는 '질 높은 삶과 죽음'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긴다. 6개월을 살더라도 연명치료없는 덜 고통스러운 삶이 12개월간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받다 죽는 삶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며, 질 높은 삶에는 질 높은 죽음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한다.[* 말기[[암]] 환자의 경우, 통증을 견디다 못해 목을 매거나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하는 환자의 사례마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말기 암 환자들이다. 안락사가 가능했다면 가는 길만큼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유족들 입장에서도 [[연명치료]]를 힘들어한다. 연명치료로 더 고생만 하게 하고 보낸 것 같아서 죄책감과 후회가 든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도 하며 지켜보는 가족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크다. 국가 차원에서도 의료 재정에 부담이 되며, 유족들도 고된 간병 이후 [[우울증]], [[PTSD]] 등의 [[정신병]]에 시달리거나 [[치매]], 병을 앓는 환자를 죽이고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 수명]]과 [[웰다잉]]이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다. 비약적으로 증가한 [[기대 수명]]과 비례해서, 인간은 양적인 단순 수명 연장보다 [[웰빙|질적으로 높은 삶]]과 그 삶의 안락한 [[죽음]]을 원한다는 것이다. [[시한부]] 환자가 아니더라도 고통이 심한 중증 환자, [[실명]]•[[마비]] 등 중증 [[장애인]], 극심한 [[우울증]] 환자, 거동이 불가능하여 [[와상생활]]을 하는 [[노인]] 등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진 사람의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안락사보다는 [[조력자살]]에 가까우며 윤리적 문제와 [[인구 절벽]] 문제[* 조력자살을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허용한다면 세계 인구의 90% 이상이 사망할 것이고,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진 사람에게만 허용하더라도 20% 정도는 사망할 것이니...]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사실상 경제적, 사회적 압박에 의한 타살이 될 것이라는 반론은 현재 어떤 나라들이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는지 보면 간단히 반박된다. 안락사 허용 요구가 높고 법적으로 허용된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이며, 지역적으로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캐나다 같은 경우는 전국민 건강보험에 병원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경제적 압박도 없지만, 80%에 달하는 국민들이 의사 조력자살을 지지한다. 안락사에 대한 요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지, 절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의사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식물인간이나 치매 노인 등의 살해, 경제적 압박에 의한 가족의 타살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 등은 위에 설명되어 있는 의사 다수의 [[기대 수명]] 예측, 정신 감정, 제3자의 개입 등 제도적 장치로 배제 가능하다. 또 사후 [[장기 기증]]처럼 갑작스런 의식 불명 상황에 대비해 미리 의사를 밝혀둔 경우에만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부작용은 여타 모든 법제가 그렇듯 보완해나가는 것이 맞는다. 반대 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미 안락사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엄격한 조건 하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허가해준다. 이때 이 환자의 고통은 경제적 부담, 차도가 보이지 않는 치료로 인한 희망고문,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정신 및 육체의 고통 등이다. 칼이나 자동차는 살인에 악용되는 사례가 매년 보고됨에도 불구하고 잘만 허용된다. 안락사의 악용 소지만을 가지고 반대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다. 호주는 모든 주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했으며 프랑스는 수개월 내에 안락사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반대 측에서는 비용 문제 등을 거론하며 안락사를 반대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무한경쟁의 폐해와 의료보험 체계의 미비함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가시키는 [[의지드립]]에 불과하다.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저소득층의 질병을 치료해주는것도 아니니 허용하든 허용하지 않든 비용 문제가 생기는 건 똑같다. [[OECD]] 중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모두 1위인 '''한국 사회는 사실상 이들을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노력할 생각 자체가 없다.''' [[http://www.hani.co.kr/arti/PRINT/733229.html|조사에 따르면]] 임종 한달 전의 환자 치료비는 임종 2년 전에 비해 약 5~6배에 이르며, 암 환자의 경우엔 전체 진료비의 1/3이 임종 한달 전에 소비된다고 한다. 거기에 간병비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임종 한 달 전에 들어가는 셈이다. 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 달에 병원비만 몇 백씩 나간다면, 그런 상태가 몇 년씩 이어진다면 재벌 아니고서야 파산하기 마련이다. 환자 본인도 링거로 연명하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말뿐인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빈곤층에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상담사들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아니라 그냥 비정규 계약직이며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같은 자격증은 서류전형에서 우대받지만 필수적이지 않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퇴직하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채용도 자주 다시 하고, 발신자가 무슨 말을 하면 무슨 대답을 하라고 짜여진 각본을 읽어 주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에게 방문을 의뢰하지만 어떤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 육신적인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아무런 직접적 도움이 안된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안락사를 금기시하려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요구에 수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안락사는 청년층에서도 찬성하고 있고 이들의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락사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안락사는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하며 정부와 종교단체가 개인의 결정권을 통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개인은 국가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 안락사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도 부당한 주장이다. 안락사는 환자가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안락사의 개념과 전제가 잘못되었다.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속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때 국가는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해야 한다.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종교의 경우 위의 서울신문의 통계자료에서 나왔듯이 아브라함 계열 종교 신자(천주교, 개신교)들도 절반 넘게 찬성하고 있어 통제를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측은 이러한 상황을 간과하며 안락사가 합법화 시 생산인구가 급감하여 국가존폐 위기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안도 없이 반대하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안락사 도입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울증, 정신병 환자, 장애인, 노인, 경제적 빈곤층에 대해 제도적 장치가 현실적으로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안락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안락사 반대 측에서 이야기하는 합법적인 살인은 그야말로 과장된 이야기로 이런 주장은 안락사 입법화의 시간을 더욱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안락사 찬성측은 현상유지가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안락사 반대측이 생명존중을 이유로 안락사를 반대한다는 것을 미사여구로 늘어놓아도 안락사를 입법화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면 개인들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폭력인 셈이다. 한국 정부가 자살예방센터 1393 전화를 아무리 홍보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자살예방 상담을 할 자질도 보증되지 않는 일반인 상담사의 위로가 실질적으로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적 고통을 줄이고 경감을 시키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금은 세금대로 걷고 국민들의 고통은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의 태도가 아니다. 안락사 논의는 어떻게 보면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이 폭발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형식적인 대응을 했으며 아직도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살예방전화로 자살사망자 수를 0로 만들겠다는 이상주의적이고 원론적인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보다 우울증과 경제적 고통이 더욱 심화되었으며 더 이상 자살예방상담으로 자살이 막아지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에서 안락사 찬성비율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정부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하루벌어 먹고 사는 국민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 시간의 문제일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연명시키는 것은 좋은일일수도 있지만 나쁜일일수도 있다. 최소한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없었을때 오래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난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중 일부는 오래 사는 것은 고통일뿐이다. 안락사의 남용이 위험하다면 안락사가 살인으로 변질되기 않기 위해서 제도를 보완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면 될일이지 안락사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소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1557837?sid=102|자살예방 1393 전화했는데…“통화료 나오면 전화 끊으시게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