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변군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조선의 계국백)] [[원삼국시대]]에는 [[옥저]] 지역의 일부였으며 [[고조선]]이 멸망한 뒤 [[한사군]] 중 [[임둔군]](臨屯郡) 불이현(不而縣)이 설치된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차지해 비열홀군(比列忽郡)을 설치했고, [[신라]] [[진흥왕]]이 정복한 후 비열주(比列州)로 개칭했다. [[삼국사기]]에는 비열성(卑列城), [[광개토대왕릉비]]와 [[창녕 진흥왕 척경비]]에는 비리성(碑利城)이라는 표기도 나온다. [[남북국시대]]에는 신라 [[9주 5소경]] 중 [[삭주]]에 소속됐으며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삭정군(朔庭郡)으로 개칭된다. [[후삼국시대]]에는 [[호족(한국사)|호족]] [[윤선]]이 여기에서 [[궁예]]의 [[태봉]]에 반기를 들고 [[말갈]]족을 규합해 대항하다가 궁예가 망한 후 [[고려]]를 세운 [[태조(고려)|태조 왕건]]에게 항복했다. [[고려]] 초기에는 등주(登州)라고 불렀으며, 안변이라는 이름은 고려 초 북방의 [[여진족]]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안변도호부에서 유래한다. 원래 안변도호부는 좀 더 북쪽인 화주(和州: 함경남도 [[영흥군]])에 있었는데 고려 [[현종(고려)|현종]] 대인 1018년에 등주로 이전하면서 안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슷하게 다른 도호부로는 [[백제]] 유민을 경계해 설치된 안남도호부([[전라북도]] [[전주시]]→여기저기 이치되다 폐지), 신라 유민을 경계해 설치된 안동도호부([[경상북도]] [[경주시]]→여기저기 이치되다→[[안동시]] 정착), [[요나라]]를 경계해 설치된 안북대도호부([[평안남도]] [[안주시]])가 있었다. [[조선시대]]인 1903년 학포사가 흡곡군(현 통천군 북부)에 편입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서부의 영풍면(永豊面)을 덕원군에 이관하여 풍상, 풍하면으로 나뉘면서 안변군에서 제외되었다.[* 1942년 덕원군의 폐지로 [[문천시|문천군]]에 편입되었다. 북한 행정구역상 [[법동군]] 지역이다.] 안변군을 1946년 소군정 때 북한의 강원도로 편입시켰다. 1952년 북한이 행정 구역을 개정하며 군의 남부지역인 석왕사면과 신고산면마저 [[고산군]]으로 분리되었다.[* 신고산면 최남단의 삼방리 인근 지역은 [[세포군]]에 편입되었다.] 그 대신 [[통천군]] 북부의 흡곡지역의 일부와 [[원산시]] 남부의 일부를 편입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