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시성(영화) (문단 편집) === [[연개소문]]에 관해 === * 작중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안 해도 될 전쟁을 유발했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당나라는 연개소문 집권 이전부터 밑작업을 충실히 해오고 있었고 연개소문의 집권은 여기에 그럴싸한 명분을 준 것이다.[* 실제로 많은 중국 왕조들은 한반도를 비롯한 근접 국가들을 공격할 때 쫓겨난 정당한 왕을 돕고 반역을 꾀한 역적을 대신 벌해준다는 명목으로 쳐들어 왔다.] * 주필산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는 연개소문이 아니다.[* 주필산 전투 패장은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이다. 영화 초반 주필산 전투 장면에서 시미와 함께 있던 장군들은 고연수·고혜진이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정식 출연자 명단에서 고혜진(주석태 분)을 확인할 수 있고, 고연수(방수형 분)는 우정출연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안시성 전투 막타를 연개소문이 친 걸로 묘사되어 퉁쳐지긴 하지만... * 연개소문이 [[펠렌노르 평원 전투]]에서의 로한 기병대처럼 안시성 외곽을 쓸어 전쟁을 끝냈다는 건 정사의 기록과는 다르나 실제로 고구려군이 당나라군의 후방 거점을 때렸다고 추정할만한 정황은 남아있다.[* 당나라군은 충분한 물자와 거점을 확보하고도 이들을 쓰지 못하고 위급하게 요택으로 쫒겨들어간다.][* 또한 고당전쟁 기록을 보면 야전에서 당나라의 승전기록으로 백전백승 도배되어 있는 반면 패전 기록의 누락이나 절묘한 타이밍에서의 당군의 증발, 진격로의 교란, 고위 지휘관들의 시의적절한 사망이나 문책성 인사 등이 상당히 많다. 교본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전형적인 전적 세탁 기록으로 적당히 걸러서 볼 정황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 서영교 교수는 "연개소문은 645년 6월 23일 주필산 전투 직후 [[설연타]]에 대한 외교공작을 벌여 설연타가 7월 당나라 하주를 공격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고, 당태종은 이 때문에 주필산 전투 이후 안시성 공격까지 한 달 이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당태종은 8월 10일 설연타의 [[진주비가가한]]이 죽어 설연타가 철군한 뒤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안시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후계자 다툼을 둘러싼 설연타 내부 정변이 마무리된 직후인 9월 18일 안시성에서 철군해 12월부터 설연타와의 전쟁을 지휘했다"고 분석했다.[*서영교,2014 서영교, 연개소문의 對설연타 공작과 당태종의 안시성 撤軍, 201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