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재홍 (문단 편집) == 기타 == * 장남 안정용은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각각 [[한국사회당]], [[대중당]] 소속으로 경기도 평택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만화]] 시나리오도 작성했다. <[[조선일보]]> 주필로 있을 시절에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4컷짜리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 스토리 부분을 맡은 적이 있다. * [[코]]와 관련돼서 세간에 회자되었는데 평소에 [[코막힘]] 증상이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코가 빨갰다고 한다. 그래서 한 잡지사에서 어떤 기자가 [[인터뷰]]하는데 안재홍에게 "왜 코가 빨갛느냐"고 물었더니 안재홍은 "취독이나 약독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그런 거라 그냥 [[몸]]에서 자연히 생긴 병인 줄로 알고 있다" 한다. * [[입버릇]]은 "어~"를 자주 붙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언젠가 회사 문제로 <[[동아일보]]>로 전화를 걸었는데 들려오는 말투에서 "어~"를 자주 붙이는 걸 듣고 단번에 전화를 건 사람이 <조선일보> 사장 안재홍임을 알아차렸다는 증언도 있다. * 걸어다닐 때는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 [[성격]]은 전형적인 [[학자]] 타입으로 [[책벌레]]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독서]]에 열중하였으며 자기 연구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매우 가부장적이어서 집안일에 까딱도 안 했다고 하는데 대신 아내, 며느리, 맏아들 안정용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안정용의 삶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어느 글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분은 요순시대 때의 양반, 정거장 대합의자 위에다가 우비(雨衣)와 옷보퉁이를 놓고 「저기 청년회좀 갔다옵시다」 「이 보퉁이들은 어떻게하구」 「그대로 두고가지!」 「누가 집어가면 어떻게 하우」 「으응 남의걸 누가 집어가? 」 하는 어수룩한 양반님! > 이는 호인, 중망(衆望)이 두터운 사람 당대 조선의 덕망있는 졂은 인격자「김기연(金起纏)군과의 쌍벽」 이 분은 일생중에 그 시골 마나님 이외에는 남의 수색씨 손목 한번 못잡어본 양반― 담배도 먹지 못하고 남에게 거짓말도 못하고 남의 뺨 한번 쳐보지도 못한 사람, 총명절인(聰明絶人)―동경 유학당시 4, 5백명 유학생의 번지―하숙, 전화, 번지까지 모조리 외어가지고 다니던 괴총명가(怪聰明家), 아호가 번지박사. > 그러나 요새 와서는 그 입에서 어쩌다가 「으응 망할 자식!」 하는 어설픈 어조의 욕이 나오는데,"「아무개! (필자를 가리킴)」 이것은 내가 신문쟁이 노릇하는 가운데서 배운 욕이야 하하하하" 조선의 험상궂은 현실은 이 양반으로 하여금 그 입에서 오히려 이런 욕이 나오게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퍽 눈물겨운 일이다. > 이분은 정객으로서는 동적인물이 아니다. 그는 앉아서 인망을 꺼려 남에게 추대받아 끌려 나갈사람 무엇을 만들고 어쩌고 하는 솜씨는 없다. 그러므로 그이는 송(宋:송진우)씨와 같은 책사(策士)는 못된다. 그이는 그저 살림꾼! 이 점이 송씨와 정반대이다. > 필자는 안씨를 후일의 호재상(好宰相)이라 한다. 현재에 있어서 안씨는 신문논객으로의 정론가로서는 조선제일의 문장님일까 한다. 그러나 이이는 남의 잘못을 곧 자기가 부족하게 생각한 것으로서 일단 그 수첩 위에 한번 오른다면 몇 10년이 되어도 그것으로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 모양. 여간 무서운 꼼바리(마음이 좁고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샌님이 아닌 점도 있다. 이만 ― * 취미는 [[등산]]과 [[산책]]이었다. 특히 등산을 좋아해서 [[경성부]] 일대에서 안 다녀본 산이 없다고 하며 [[마니산]], [[백두산]]도 등정했다. 백두산의 경우 후에 등정기를 남기기도 했는데 이 글은 나중에 정민 선생이 쉬운 말로 [[번역]]하여 <백두산 등척기>라는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http://www.yes24.com/24/goods/4299935|#]] * 평소에 [[금욕]]적인 생활[* 사실 항일 독립운동 행적 때문에 살면서 감옥을 자주 갔다 왔기 때문에 금욕 생활이 몸에 배었을 수도 있다. 그 스스로 한 독신 남성처럼 산다는 표현도 감옥에서 살다 보면 억지로라도 하게 되기에, 항일 독립운동가로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수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금욕을 인생 기본 바탕으로 결심했을 확률이 높다.]을 하였는데 유명 인사의 [[건강]]법을 소개하는 [[잡지]] 기사에 자신의 건강법을 "[[정력]](精力)[* 여기서 말하는 정력은 [[정력#s-1.2|2번의 의미]]보다 [[정력#s-1.1|1번의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의 절약(節約)"으로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1. 정력의 절약, 집중을 주의로 일정한 규칙을 지킵니다. 담배 안피기(不烟), 술 안 마시기(不酒), 노름 안하기(不雜技)를 원칙으로 하고 장시일을 독신자(獨身者)처럼 지냅니다. > 1. 여가를 얻으면 등산 산책에 취미를 붙이어 기분을 전환시킵니다. 경성도 인왕, 백악, 금화, 종남 등 산들은 여러 번 씩이요 관악, 삼각 등 산도 모두 올러다녔습니다. > 1. 예수(耶), 부처(佛), 노자(老), 장자(莊) 등 세속에서 벗어난 문장을 완미(翫味: 시문의 의미를 잘 생각하여 맛봄)하여 되도록 심신의 막힘을 풀어 버리기로 유의합니다. * 그의 [[글씨]]체는 잡지 <삼천리>의 교차점 코너의 묘사에 따르면 이러하다. 글씨를 [[원고지]] 칸 안에 맞추지 않고 마구잡이로 쓴다는 뜻이다. >"...안재홍(安在鴻)씨는 어떤 글자는 한다 하는 명필도 못 따르게 잘 쓰고 어떤 글자는 소학교 1년생 만도 못하게 쓰는데 통틀어 말하면 원고글씨는 지저분하게 또 치외법권을 주장하듯이 밖으로 자꾸 뻗어져 나가는 글자를 쓰는 편이며..." ([[http://www.minse21.or.kr/xe/index.php?mid=minse_photo&document_srl=604|실제 글씨체]]) * [[경기도]] [[평택시]]에 생가가 있는데 현재 안재홍의 [[며느리]]인 김순경 여사께서 관리하시는 중으로 생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테마공원이 조성됐다. 이 집 향나무를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탐을 내었으나 [[가족]]들이 팔기를 거절해서 정원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http://raonyss.tistory.com/333|#]] * <[[동아일보]]>, <[[뉴데일리]]> 같은 곳에서 안재홍을 [[여운형]]과 더불어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안재홍을 [[친일파]]로 몰아붙일 때 항상 '여운형과 같이 부일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하는 것들은 과거 [[한국민주당]]과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민주당은 안재홍을 친일파라고 엄청 몰아붙였는데 [[http://www.yes24.com/24/Goods/1455398?Acode=101|이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특히 가장 몰아붙인 인물들이 [[조병옥]], [[김준연]], [[이인]]인데 이들 3인방[* 이인, 조병옥, 김준연 3사람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한국민주당 인사들이다.]은 회고록을 통해 안재홍을 여운형과 같이 친일 활동했다고 싸잡아서 기술해놨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 김준연이 있는데 김준연은 '안재홍은 여운형과 같이 식자 계층들을 끌어 모아 민족유신회라는 어용 단체를 조직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04220009920101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9-04-22&officeId=00009&pageNo=1&printNo=955&publishType=00020|#]] 그러나 '민족유신회'라는 단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런 식으로 조병옥과 이인도 역시 김준연이 지어낸듯이 쓴 것들이 엄청 많다.[* 본 내용과는 무관한 말이지만 조병옥은 [[일본 제국|일제]] 말기 '임전대책협회'에 나서 시국 [[강연]]을 1차례 발표한 적이 있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조병옥 같은 경우 [[기회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거 1~2건 활동 가지고는 친일파라고 규정짓지 않는다. '수십여 차례 기고했다거나 강연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했느냐?' 판단 여부를 따진다.] 1970~1980년대 군사 [[독재]] 정권 치하 시절에도 안재홍은 거의 [[금기]]의 대상이였다.[* 이건 당시 납북된 [[정치인]]들이 겪었던 일들이다. 납북된 정치인 가운데 특히 [[조소앙]]은 아예 [[빨갱이]] 취급당했던 시절이었다.] 1982년에 [[대한민국 제5공화국]] 당시 정보당국에서 고용한 익명의 필자(저자가 실존 인물인지 자체가 불명)가 <추적 여운형>이라는 책을 지었는데 이 책은 여운형에 대해 어떠한 사상을 주입시키고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붙이려는 의도로 지어졌으며 이 책에 따르면 안재홍도 친일파라고 크게 기술해놨다.[[http://www.bookhunter.co.kr/shop/shopdetail.html?brandcode=040007000166&search=&sort=product|#]] 그러나 안재홍은 [[거짓말]] 한마디도 안 보태고 그의 비타협적 [[민족주의]] 행보 때문에 [[감옥]]을 제 방처럼 드나들었고 본인 스스로 '순정 우파'라고 노선을 밝힌 적이 있을 정도로 확실히 민족주의 [[우파]]이므로 우파 입장에서 친일파라고 비판할 수도 없고 [[좌파]]라고 비판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심지어 안재홍의 경우 <조선일보> 주필과 사장을 지낸 [[경력]][* 조선일보 주필일 때 반일, 반총독부 성향의 사설로 감옥도 갔었다.]이 있기 때문인지 <조선일보>도 웬만해선 안재홍을 잘 비판하지 않는데 <조선일보> 입장에서는 [[자폭]]이나 다름없기 때문. 다만 안재홍을 [[신채호]], [[조만식]]과 더불어 띄우면서 자신들도 '[[민족]] 정론지'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기사를 쓴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단독 정부 수립을 찬성한 한국민주당[* 한국민주당 세력들은 전체의 4분의 3 가량이 친일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 그 자체였다.] 기관지라 그런지 안재홍을 비판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