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중근 (문단 편집) ==== 2013년 [[아베 신조|아베 내각]]의 망언 ==== 2013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표지석을 설치할 것을 제의하였고, 중국이 이를 수락하여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표지석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박근혜는 2013년 11월 18일, 청와대를 방문한 양제츠 국무 위원에게 이에 대한 사의를 표했는데, 이에 일본은 격렬히 반발하며 11월 19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망언을 하는가 하면, 관방 부장관까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608206|망언을 연이어 쏟아내었다.]] 물론 이 발언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만으로 따지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는데, 안중근이 이토를 처단한 것은 사사로운 원한 등이 아니라 이토가 한국 식민 통치에 앞장섰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처단한 것이다. 또한 재판 자체가 원래 재판이 이뤄져야 할 러시아가 아닌 일본에서 처음부터 불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쏙 빼고 명백한 독립투사를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해당 발언은 아시아권의 화제가 되었는데, [[일본]]의 현역 공식 관료가 안중근 의사의 표지석 설치를 반대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절 저질렀던 식민 통치와 침탈을 정당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에게 도발을 정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 제대로 된 역사 의식이 없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였고 [[731 부대|마루타]] 같은 망언에 놀아나지 말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2010년부터 [[731 부대]]에 대한 내용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중국 측의 행보를 비꼰 것이라, 사실상 일본 측은 안중근 의사를 빌미로 중국 쪽이 추진하고 있는 일을 힐난한 것에 가깝다. 덕분에 국제 정세 전문가들은 "일본이 알아서 도발을 했으니, [[중국 공산당]]은 지침상 적극 대응할 테고 [[하얼빈역]]에는 표지석 수준이 아니라 아예 번듯한 기념관이 생길 것이다"라며 환호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4011908190001300_P2.jpg|width=500]] 그리고 2014년 1월 20일, 진짜 번듯한 건물로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s-2]]이 생겼으나, 2017년 사드 문제 여파 및 하얼빈역 확장공사로 2년 간 조선민족예술관에 임시로 이전한 바 있었는데, 2019년 공사가 끝나 다시 재개관식을 하여 지금까지 계속 운영하고 있다. 이 기념관의 입구 앞 시계는 움직이지 않는데, 중국 정부가 일부러 안중근이 총을 쏜 시각인 '''9시 30분'''에 멈춰 있게 설계해 놓았다. 추가로 이 기념관을 공사할때, 이와 별개로 안중근이 실제로 총을 쏜 기차 승강장 천장 아래에 간판을 달아 "안중근격폐이등박문사건발생지"라고 잘 보이게 한자로 크게 새겨 놓고 1909년 10월 26일이라고 날짜까지 정확히 새겨 놓았다. 사실은 100년간 단순히 바닥 타일로만 표시했던 걸 아예 간판으로까지 바꿔 버린 것. 당시 센카쿠 열도 분쟁 고조 등 중국 정부의 반일감정이 급격히 심해졌던 시기라, 일본 정부가 안중근 기념을 싫어하는 걸 인식하자, 중국 정부가 고의로 한국 정부의 요구보다 훨씬 더 강하게 아예 기념관 건물 건축과 중대형현판으로 안중근을 기념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