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중근 (문단 편집) == 그 외 == * 체포당한 후 일본 법원에서 공판 도중에 자신의 상관으로 [[김두성]]을 거론한 적이 있다. 일본은 당연히 눈이 뒤집혀서 이를 잡으려 찾아다녔지만, 결국 누군지 찾지 못했다. 문제는 현재도 그가 누군지, 심지어 실존 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 * 2009년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재판권을 고종이 일본 법정에서 러시아 법정으로 옮기고 [[러시아]] 거류 한인들에게 변호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밀사를 보냈다는 내용의 일본 기밀 문서가 이태진 교수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의 책임연구원 신운용은 다른 방계 사료로 그런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 안중근 의거를 병탄의 기회로 노리고 있던 통감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오히려 책을 잡을 구실임에도 일제 외무성이 고종 배후설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 고종과 황실이 안중근의 의거를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 등에서 성립될 수 없는 가설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는 안중근이 하얼빈 의거와 관련하여 자신의 배후로 지목한 대한 의군 총대장 [[김두성]]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태진은 김두성을 고종 황제 자신으로 지목했지만 신운용은 이를 반박하고 김두성은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출처: 신운용 「한국의 안중근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둘)」 《남북문화예술연구》제11호, 2012년). 이보다 한참 전인 1969년에 조동걸 춘천 교육대 교수(현 국민대 명예 교수)는 「안중근 의사 재판 기록상의 인물 김두성고」(《춘천교대 논문집》7, 1969년)에서 김두성은 [[유인석]]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망포초등학교 도서관 이름이 안중근관이다. * 안중근 의사를 기념한 시그니쳐 [[일렉기타]]도 출시되었다. 기타 바디에는 "국가안위 노심초사" 등을 비롯한 명언이 한자로 적혀 있으며 지판에는 손도장 인레이가 자개로 박혀있다.[[http://www.samickstore.com/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3237|링크]] *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으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2022년에는 전 일본 총리대신 [[아베 신조]]가 [[야마가미 데쓰야]]에 의해 [[아베 신조 피살 사건|사제 총기로 피살당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는데, 이후 야마가미가 사회 부적응자는커녕 모범시민에 가까웠던 점, 오로지 [[통일교]]에 대한 복수심으로 저격을 감행한 점 때문에 재평가를 받자 일부 일본,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반쯤 장난으로 야마가미를 '''레이와의 안중근'''으로 부르기도 했다.[[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62229|#]][* 여담이지만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죽은 이토 히로부미도 일본 총리를 지냈었다.] * 200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작한 신발 브랜드 그램(Gram)이 훗날 [[http://gramshoes.co.kr/board/view.php?&bdId=notice&sno=6|티셔츠를 출시했다]]. 이 의류의 왼쪽 가슴 부위에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Truth wins over distortion of history)이 찍혔다. 역사 알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 대만의 사진 수집가이자 칼럼니스트 쉬충마오(徐宗懋)가 [[https://v.daum.net/v/20230624150033024?f=m|안중근의 사진]](1910년 3월 25일)을 소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