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창호 (문단 편집) === 민족개조론과 개인주의 ===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이란 것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민족개조론이 안창호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처럼 설명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창호를 잘못 인식하는 데 영향을 줬다. 그러니 이광수의 주장 = 안창호의 주장이라는 것부터 틀렸다. 안창호가 말한 '민족개조론'이란 일제에게 해방돼서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전제 아래, 민족에 대한 책임감과 독립된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길러서 독립국민에 맞는 자격을 갖게 하겠다는 것으로 혁명투사를 만들기 위해 개조를 주장한 것이었다.[* 박만규, 도산 안창호의 개혁사상과 민족개조론, 역사학연구 61, 2016, 244~245)] 안창호는 통합과 함께 개인주의를 중시했다. 예로 미국을 예로 들면서 [[개인주의]]가 강해서 공동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으나 실제로는 잘만 한다면서 개인주의와 공동주의를 배타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개인이 조직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근거해야 하고, 그래야 조직의 뿌리가 강해진다고 보았다. 민족의 힘이라는 것도 개개인의 힘에 나오는 것이라 봤다.[* 박명규, 도산의 민주적 조직론, 도산사상연구 2, 1993, 257~258)] 또한 사적인 관계나 사상적 관계로만 통합해서도 안 되고 통합된 조직은 사상적 통합으로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안창호에게 통합이란 '실제적인 일', '구체적인 사업'을 위해 결합해서 단결하는 것을 말했다. 당연히 사상통합을 말한 게 아니니 개개인의 의견 차이, 갈등, 대립이 없는 통합을 말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지도자들의 싸움은 당연한 것이며, 있어야 하는 것이며, "만일 싸우지 않으면 충성 있는 지도자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며 개개인의 논쟁과정은 당연하게 생각했다.(다만 이건 같은 조직에서 하는 것을 말하며 조직을 분리해서 다른 별개 조직이 되어서 싸우는 것은 반대함) 다만 그런 논쟁 절차를 거치고 합의가 이루어져서 '공론'이 이루어지면 복종해야 된다는 것이 안창호의 조직론이었다. 이 공론은 위에서 말했듯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과 사업을 말하며 이데올로기와 달랐다.[* 박명규, 도산의 민주적 조직론, 도산사상연구 2, 1993, 259~260] 안창호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통합과 조직을 이루는 것을 좋지 않게 봤다. 이데올로기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는 다른 집합적이고 공식적인 이념체계이며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합의되는 의사결정이나 결의사항과도 다르지. 안창호는 집합적이고 공식적인 이념체계에 근거한 통합을 좋아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일과 계획을 위해 개개인들이 결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박명규, 도산의 민주적 조직론, 도산사상연구 2, 1993, 260] 안창호는 개인역량강화를 중요시했는데, 그건 바로 이런 개인주의를 중요시하는 사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민족이 하나가 돼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개인주의에 근거하여서, 개개인이 존재가 있는 '실제적인 일'과 '구체적인 사업'을 위해서 조직을 이루어야된다는 게 안창호의 조직론이었다. 그와 달리 춘원은 '자치론'을 전제한 것이라서 주장의 전제부터 달랐고 민족의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도덕성에 근거한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주장이라 목표도 다르다.[* 박만규, 도산 안창호의 개혁사상과 민족개조론, 역사학연구 61, 2016, 245]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안창호의 영향을 따른 것이란 주장은 이광수 자신의 주장일 뿐이다.[* 장석흥, 안창호 - 한국 독립운동의 혁명 영수, 역사공간, 2016, 25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