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카에다 (문단 편집) === [[9.11 테러]]와 [[테러와의 전쟁]] === [[1990년대]] 이후 알 카에다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미국을 겨냥한 테러 사건]]을 잇달아 일으켰다.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1997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에 폭탄 테러를 가했으며]], [[빌 클린턴]]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알 카에다의 거점으로 간주되던 [[아프가니스탄]]의 훈련기지와 [[수단 공화국|수단]]의 제약 공장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가함으로써 미국과 알 카에다의 갈등은 극단에 이르게 된다.[* 다만 수단의 제약공장과 알 카에다 간에 실제로 커넥션이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으며, 이 제약공장이 [[남수단]]의 거의 유일한 제약공장이라서 되려 남수단 아이들에게 필요한 [[백신]] 보급을 끊어버렸다는 비난이 거셌다. 게다가 당시 터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추문을 덮어버릴 전투라는 음모론까지 나오면서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378|웩 더 독]]이란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경고가 있었지만 미국은 알 카에다에 대한 초기 대응을 확실히 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먼저 이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고, 두번째로 90년대에는 오직 미국을 겨냥한 테러만 잇달아 일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랍 민족주의 정부들을 향한 무수히 많은 테러 속에서 미국과 연관된 몇 건의 테러가 있었던 것이었다. 세 번째로 [[소말리아]] 파병이 [[모가디슈 전투]]라는 참담한 실패로 종말을 고하면서 국제적인 군사 개입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 적극적으로 알 카에다를 [[토벌]]하기에는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즉 미국이 알 카에다에 대한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이슬람 내부 국가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 불똥이 미국에게 튀는 일은 그 전까지 계속 있어왔던 일이었기 때문에 알 카에다를 초기에 때려잡는 게 아니라,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랍 국가 정부를 지원해 아랍 국가가 알아서 때려잡도록 소극적인 대응을 했던 것이다. 이는 걸프전에서도 나타난다. [[사담 후세인]]이 무조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영토에 다국적군을 단 하나도 배치시키지 않았다. [[2000년]]에는 자폭 보트를 이용해 [[예멘]]에 주둔한 미 군함 USS 콜(Cole)[*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1 공수사단의 장교 이름이다.]호의 [[콜호 자살폭탄테러|오른쪽 선체에 구멍을 내고 미 해군 17명을 죽게 하고 30명을 부상시키는 등 알 카에다의 테러는 과격을 치달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알 카에다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파일:external/rekisi.amjt.net/o0510039311663033287.jpg]] '''[[2001년]] [[9월 11일]], 흔히 [[9.11 테러]]라고 부르는, 4대의 여객기를 납치하여 [[미국]]의 뇌와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세계무역센터(붕괴 이전)|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충돌을 일으키고 [[백악관]]을 노린 비행기 납치를 저지르는 희대의 테러를 일으킴으로써 알 카에다의 이름은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조지 워커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알 카에다를 겨냥하여, 전 세계 모든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알 카에다의 본거지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면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서막을 알렸고, 곧바로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연관이 있다는 언플을 시작으로 대중을 선동하면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기나긴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2009년 10월, 이들은 ~~리얼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을 실현하려고~~ [[중국]]의 [[위구르]] 사태에 개입하겠다고 하면서 세계를 긴장시켰다. 이어서 2010년 4월 10일, 이들은 6월 [[남아공 월드컵]]에 테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목표는 6월 12일 열린 C조의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영국(잉글랜드)]]-[[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 경기. D조에 속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도 테러 목표물로 언급되었다.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찬 가운데 미국-영국전이 생중계되는 도중 폭발음이 진동하고 경기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수십, 수백 명의 시신이 뒹굴게 되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인가"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테러 없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던 2011년 5월 2일, 끈질긴 추적 끝에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미합중국 중앙정보국|CIA]]가 입안하고 미국 내 최정예 특수부대가 실행한 [[오사마 빈 라덴#s-2.5|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사살당하면서 리더를 상실하였다. 당시 빈 라덴 사후 알 카에다를 이끌 유력 후보로는 조직 내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알 자와히리]]와 뛰어난 화술로 '설교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안와르 알 올라키가 꼽혔다. 결국 안와르 사다트의 암살을 뒤쪽에서 조종한 실력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공식적으로 알 카에다를 이어받았다. 알 자와히리는 아잠과의 내분에서 빈 라덴의 편을 들은 심복이며, 이집트에서 지하 무장 단체를 이끌며 무바라크에 대항하였다. 알 자와히리는 수니파 극단주의자인 만큼 대외적으로는 [[이란]]을 비난하였지만,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과 협력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알 자와히리에 반발을 들고 있는 알 카에다 세력도 있기는 있다. 그리고 [[소말리아]] 지역의 책임자이자 알 샤바브 [[민병대]]의 최고 지휘자인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Fazul Abdullah Mohammed)가 [[소말리아]]에서 사살되었다. 현지 시간으로 2011년 6월 8일에 알리 데레(Ali Dere)와 함께 4만 달러와 의약품, 랩톱, 휴대전화와 여권을 차에 싣고 아프구예(Afgooye) 부근을 지나던 도중에 소말리아군의 검문소에서 정지하지 않자, 소말리아군이 즉시 사격을 가해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소말리아와 미국 관리들이 죽음을 확인했다. 빈 라덴 이후 2인자로 부상한 아티야 압드 알-라흐만(Atiya Abd Al-Rahman)이 2011년 8월 22일 파키스탄에서 무인기 공습을 받고 사살당했다. 파키스탄 내에 있는 알 카에다는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9월 30일 안와르 알 올라키가 예멘에서 CIA가 무인기를 대거 동원한 폭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알 올라키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이 작전의 성공은 빈 라덴의 사살에 이어 알 카에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알 카에다와 연계된 단체인 [[보코 하람]]이 테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북부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며 [[니제르]]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에 훈련 캠프를 차리고 무기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1년 8월 26일 유엔 본부를 테러해 악명을 떨쳤으며 같은 해 12월 25일 교회를 공격했다. 계속된 공격에 나이지리아는 2012년 1월 1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보코 하람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나이지리아 정부군도 막장이라 보코 하람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나 해주고 있다. 2015년 6월, ISIL에 밀려서 콩라인이 되었던 알 카에다가 결국에는 '''ISIL의 쿠데타에 의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5&aid=0000783260|조직이 붕괴하였다고 한다.]]''' 한때 세상에 악명을 떨치던 알 카에다가 [[ISIL]]에 의해 몰락했다는 것은 [[ISIL]]이 얼마나 거대화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6월 12일,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 수장인 나시르 알 우하이시[* 알 자와히리에 이은 알 카에다의 2인자이며, 빈 라덴의 개인 비서를 지냈다고 한다.]가 [[예멘]]에서 사살되었다. 2017년 12월 미군과 아프간군은 아프간의 알 카에다를 공격하여 알 카에다 남아시아 지부의 2인자 오마르 케타브와 알카에다 대원 80명을 사살하고 27명을 체포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6/0200000000AKR20171206133900077.HTML?input=1195m|#]] 2019년 2월 22일에 프랑스군은 말리에서 알카에다 조직 수장인 야히아 아부 엘 하마메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0652752|#]] 2020년 6월 4일에 프랑스의 파를리 국방장관은 말리에서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의 수장인 압델말레크 두르크델을 말리의 알제리 국경 근처에서 제거했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660412|#]] IS 산하 단체와 알카에다 연계 단체가 서아프리카에서 서로를 배신자라 부르며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711201|#]] 알카에다의 이인자인 아부 무함마드 알마스리가 2020년 8월에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측에 의해 암살됐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란측은 부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014302|#1]][[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3&aid=0010185402|#2]] 이란의 국영통신은 알마스리가 이란이 아닌 아프간에서 아프간 국가안보국에 사살됐다고 아프간 외무부 차관을 인용해 보도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3&aid=0010189706|#]] 알카에다가 미군 철수가 예정된 아프간에서 탈레반과의 협력을 통해 세력 회복(!)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1829521?sid=104|#]] 2022년 8월 2일, 알 카에다의 현직 지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제거되었다.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 알 카에다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911 테러에도 관여하였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45121&plink=TWEET&cooper=TWITTER|#]]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