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록강 (문단 편집) == 역사 == [[한국사]]에서 몹시 중요한 강인데, 기원전 1세기 [[고구려]]가 압록강 상류에서 건국되어 5세기 [[평양시|평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500년 가까이 압록강 유역에 머물렀다. 고구려, 발해가 멸망한 이후 [[고려]]와 [[조선]]이 이 강을 국경선으로 삼으면서 1천 년 넘게 한민족과 이민족을 가르는 경계 역할을 하였다. 17세기부터 [[두만강]][* 1712년 세워진 [[백두산정계비]]상에는 [[토문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두만과 토문 모두 만주어 tumen의 음역이지만 표기를 달리한 것.]과 더불어 조청 양국의 국경선으로 기능하였다. [[평안북도]]와 [[함경남도]],[*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자강도]], [[량강도]]] 그리고 중국의 [[지린성]]과 [[랴오닝성]]이 경계에 맞닿아 있다. 압록강 유역은 예로부터 전략 요충지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압록강 상류에 [[환도성]](위나암성)을 쌓아 전시(戰時) 수도로 활용했으며, [[청일전쟁]] 시기와 [[러일전쟁]] 때에도 압록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여러 번 벌어졌다. [[6.25 전쟁]] 때에는 [[대한민국]]이 한번도 수복해본 적이 없는 [[두만강]]과 달리 2차례 [[대한민국]]의 영역에 들었던 적이 있다. 1950년 10월 26일, 압록강 연안 [[초산군|초산]](楚山)에 돌입한 [[대한민국 육군]] 6사단 [[제7보병여단]]이 압록강 물을 [[초산 전투|수통에 떠오기도 했으며]], 잠깐이지만 1950년 11월 21일에는 압록강 상류의 [[혜산시|혜산]]도 연합군이 수복했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침입으로 인해 [[1.4 후퇴|아쉽게 후퇴해야 했으며,]] [[미합중국 공군|미 공군]]이 북한에 대한 중공군의 지원을 끊기 위해 [[압록강철교]]를 폭파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