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골라 (문단 편집) ===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앙골라 독립전쟁]]([[1961년]] ~ [[1975년]]) === 20세기 초 범아프리카 운동이 대두되면서 독립운동의 물결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1956년]]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이 조직되고, [[1958년]]에는 앙골라인민연합(UPA)이 창설되었다. [[1961년]] 이들 단체의 무장독립투쟁에서부터 앙골라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앙골라 독립에는 [[소련]], [[중국]], [[쿠바]]를 비롯한 공산권의 지원이 활발하였다. 당시 소련은 공산 혁명과 관련하여 식민지 해방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냉전]] 시기 세력 확장을 위하여 아프리카 식민지 독립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한편 중국의 경우에는 소련과의 대립, [[제3세계]] 주도권을 둘러싸고 활발하게 해외 원조를 하고 있었다. 한편 소련과 쿠바가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을 지원하자 소련의 라이벌인 [[미국]]과 서방세계는 우파 성향의 앙골라인민연합(UPA)과 그 후신인 앙골라민족해방전선(FNLA)을 지원하며, 이들은 경쟁 관계 속에서 포르투갈이라는 상대를 두고 포르투갈군과 전쟁을 벌였다. 그러던 와중에 [[1974년]] [[포르투갈 제2공화국]] 독재 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으로 붕괴되고, 혁명 후 들어선 포르투갈 신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1975년]] 앙골라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앙골라는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독립군 단체들과의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여담으로 앙골라 독립 직후, 앙골라 거주 포르투갈인들이 대부분이 아니라 거의 모두 앙골라를 떠나 본국 포르투갈로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신변 위협으로 앙골라 독립 이후에 앙골라인민해방운동 등 앙골라의 독립 운동 세력들이 포르투갈인들부터 백인들을 사실상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에게 재산을 강탈하고 나아가 목숨까지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주민 얘기에 따르면 독립 직후에 신정부 흑인들은 포르투갈 출신 자본가들에게 "자산을 대부분 놓고 나가라"는 협박을 하면서 언제까지 안 나가면 목숨을 보장 못해준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포르투갈인들이 쫓겨나듯이 앙골라를 떠나고, 남아서 저항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부모 한쪽이 흑인으로 혼혈 정도만이 겨우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는 앙골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다른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기니비사우]]와 [[모잠비크]]에서 살던 포르투갈인들 역시 비슷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