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기살 (문단 편집) == 타국의 애기살 == 서양과 서남아시아, 인도에도 솔레나리온[[http://www.kjclub.com/UploadFile/exc_board_14/2011/07/01/3.jpg|##]], [[http://www.kjclub.com/UploadFile/exc_board_14/2011/07/01/4.jpg|##]],[* 출처 : [[http://www.kjclub.com/kr/exchange/photo/read.php?tname=exc_board_14&uid=6413&fid=6413|##]]] [[http://3.bp.blogspot.com/-Y5oHs0G00nI/TZ7mozmdl9I/AAAAAAAACO4/MrqfS8IEI-0/s1600/Turkish+warrior+with+bow+and+majra.jpg|마즈라]][* 출처 : [[http://defense-and-freedom.blogspot.com/2011/04/exotic-ancient-weapons-i-majra.html|##]] ] 같이 가벼운 화살을 통아에 넣어서 발사하는 방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효과도 비슷해서 먼 거리에서 빠른 화살을 날려서 적을 교란시키는 용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애기살은 [[몽골]] 침입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저쪽은 훨씬 전인 6세기 경부터 기록이 등장한 바 있다. 참고로 조선에서는 [[http://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7/2011090700706.html|당나라 때 중국에 존재한 통전(筒箭, 통사(筒射))가]] [[http://cafe427.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4uDE&fldid=NYpR&contentval=0000B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애기살과 유사한 무기라는 관념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다.]] 때문에 애기살과 유사한 무기가 고려 말 이전부터 동아시아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은 이유로 [[스키타이]]를 계승한 [[훈족]]을 통해 [[서남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고구려]]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 [[파르티안 사법]]과 [[등자]]가 전해질 때[* 참고논문 -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dbc2724d6e52ead4d18150b21a227875|한국 기병의 무기와 기병전술 Armed of cavalry and cavalry Tactics in Korea (이홍두, 2014)]], [[https://blog.naver.com/miraclestor/221230212918|전문보기]]] [[편전]] 또한 같이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왜 [[등자]][* 등자 또한 최초유물은 4세기이나 실제로 정확하게 한반도에 전해진 시기를 기록만으로는 특정하지 못하고 있디]와 달리 [[편전]]에 대한 기록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등자]]의 경우는 [[기마병]]을 대량으로 양성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쉽게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게 가능했으나 [[파르티안 사법]]은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도 등장할 정도로 [[등자]]와 함께 [[동아시아]] 지역에 전해진지 오래되었지만 모든 동아시아 국가에서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과 수련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선]] 시대는 물론 근현대에도 특정 계층/직업군만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화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편전]] 또한 '''장전의 복잡함과 어려움[* 당장 앞 항목에 [[https://youtu.be/vYaG8ZPqfAI?t=73|링크]]된 영상만 봐도 컷편집이 됐음에도 [[전장식]] 라이플을 장전하는 수준으로 화살걸기에서 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냥용이나 일반 병사들이 전투용으로 쓰기는 부적절하고 전투 시작시 원거리에서 1~2회 정도 사용할 법한 무기였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숙련되지 못하면 사수가 손을 다칠 수 있다는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소수 계층에서만 수련을 해오다가 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잠시 대중화가 되었다가 다시 전쟁이 끝나면 똑같은 이유로 특정 계층만이 익히는 것이 반복되다보니 기록상 고려 때 처음으로 사용된 것처럼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파르티안 사법]] 또한 조선 이전의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없으나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벽화를 통해 고구려 시대때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편전 또한 [[이덕무]]가 청장관전서 앙엽기에서 언급한 대몽항전 이전에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태종실록 026 13/07/28(을사)'''에서 '''(임금이) 중외(中外)에 편전(片箭)을 쏘는 것을 연습하라고 명하였다. 김여지(金汝知) 등에게 일렀다. (중략) 김여지 등이 《산당고색(山堂考索)》을 고찰하니, 곧 당(唐)나라 무후(武后)가 만든 통사(筒射)이었다.''' 라는 언급이 있는 것을 통해 이미 당나라(618~907) 초기부터 중국에서 사용했돈 통사(筒射)와 우리의 편전(片箭)이 유사한 무기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도 최소 고구려 후기, 혹은 그 이전부터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으나 대중화되진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전국시대때 조선으로부터 전래되어 소수 사용되기는 했으나, 당시에 이미 철포가 전래되어 보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 활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https://youtu.be/yKzkUPw0Euo|영상]] 애초에 [[장궁]]으로 분류되는 일본활로 편전과 같은 형태의 화살을 각궁처럼 매겨 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고. 현대에는 [[컴파운드 보우]]용으로 나오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