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제(당) (문단 편집) === 즉위 이전 === [[소종(당)|당소종]]의 9남으로 원래 이름은 이조인데 황태자로 책봉된 후 이축으로 개명했다. 생모는 적선황후(積善皇后) 하씨(?~905)이다.[* 적선황후 하씨는 이엽이 수왕이었을 때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이엽은 용모가 수려하고 지혜로운 하씨를 총애했다. 하씨는 이엽의 장남 이유(?~904)와 9남 이조를 낳았다. 이엽이 황제로 즉위한 후 숙비로 책봉되었다. 건녕 연간 당소종이 화주로 몽진했을때 그녀를 황후로 책봉했다. 적선황후는 당소종이 시해되고 아들 휘왕 이조가 즉위한 후에는 황태후로 추대되어 적선궁(積善宮)에서 거주했다. 그래서 그녀를 적선황후라고 부른다. 하씨는 천우 2년(905)에 주전충이 황위를 찬탈했을 때 피살되었고, 주전충은 그녀를 서인으로 격하시켰다. 이후 후당의 이사원은 하씨에게 선목황후(宣穆皇后)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건녕 4년(897) 이조는 휘왕으로 책봉되었으며 천복 3년(903)에는 개부의동삼사, 제도병마원수 등의 고위관직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당시 그는 6세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으므로 직함뿐인 자리였다. 당소종이 유계술을 필두로 한 환관들이 정변으로 구금되었는데 당시 장남은 덕왕 [[이유(당)|이유]]였다. 환관들이 소종을 대신하여 이유를 황제로 추대한 일이 있었지만, 천복 원년(901) 재상 최윤과 금군의 장수 손덕소가 연합하여 환관들을 제압했다. 그 후 당소종은 복위했으며 이유는 다시 덕왕으로 강등되었다. 어쨌든 황위찬탈의 누명을 쓴 덕왕 이유는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운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