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액티비전 (문단 편집) === 초창기 성장과 [[아타리 쇼크]] === 회사가 첫 게임을 내던 1980년에는 흥행이 그저 그랬지만 이후 1981년 래리 카플란이 개발한 <카붐!>이 100만 장을 판매하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고, 이후 1982년 고전 플랫폼 액션 게임이었던 [[피트폴]]을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게임은 아타리 2600 역사상 2위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외에도 100만장 이상 판매된 액티비전 게임은 6개나 되었고, 그 덕에 1983년 종업원은 60명뿐이었지만 단숨에 6천만 달러 규모의 매출액을 기록한 중견 기업이 되었으며 그해에 [[나스닥]]에도 성공적으로 기업 공개를 할 수 있었다. 게임 제작에 대한 노하우와 급속한 성장 덕에 그들은 다른 게임회사들과 다르게 아타리 2600 외에도 [[인텔리비전]]과 [[콜레코비전]]에도 게임을 내기도 했다. 또 상하이 시리즈로 '마작 솔리테어' 장르를 만들기도 했다. 1986년부터 1999년까지 마작을 유행시킨 주범이다. 1982년 말, 래리 카플란은 하드웨어 개발에 종사하고 싶다면 액티비전을 퇴사해 코모도어의 [[아미가]] 개발 부서로 떠난다.[* 이후 그는 게임계를 은퇴해 [[실리콘 그래픽스]], 월즈 오브 원더, 마이크로유니티(1991년~)에 근무하다 현재는 팔로알토에 살고 있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개미(드림웍스)|개미]]에 기술 수석 이사로 임명되었지만 몇 달만에 그만둬서 큰 공적은 없다.] 그러나 1982년 말부터 [[아타리 쇼크]]를 맞이하면서 액티비전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460명이던 직원을 구조조정해 95명으로 줄였고, 1984년에는 로버트 화이트헤드와 앨런 밀러가 액티비전을 떠나 애콜레이드(Accolade, Inc)를 설립했다. 짐 레비는 경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정용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1986년 6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던 인포컴을 인수했다. 이는 그가 이사회와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사회는 1987년 CEO였던 짐 레비를 브루스 데이비스로 교체했다. 데이비드 크레인은 브루스 데이비스가 이매직의 마지막 CEO로서 파산 회사 관리를 하던 모습을 알고 있었고, 그를 게임회사 CEO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브루스 데이비스와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듬해인 1988년 데이비드 크레인마저 액티비전을 떠났다. 이로써 설립자 5명 모두 아타리 쇼크로 인해 액티비전을 떠나게 되었다. 1988년 액티비전은 미디어제닉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액티비전을 비롯해 산하 여러 회사를 자회사로 만드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미디어제닉은 텐 포인트 오라는 산하 회사를 만들어 업무용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나려는 것이 목표였고, 그 전까지 액티비전과 인포컴은 각각 게임기 게임과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1988년 필립스와의 퐁 특허 분쟁에서 패소해 660만 달러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인 1989년 인포컴은 결국 문을 닫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