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스히토 (문단 편집) == 결혼과 가정 == [[파일:external/pds.exblog.jp/a0287992_048335.jpg]] 부인 [[세츠코 비]]와 함께 1928년 9월 28일, [[마츠다이라 세츠코]]와 결혼했다. 세츠코는 1909년 [[외교관]]인 아버지 마츠다이라 츠네오(松平恆雄)의 부임지이던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이후로도 [[중국]]과 [[미국]] 등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귀국자녀]]이다. 야스히토 친왕은 [[미국]]을 방문하였다가 [[워싱턴 DC]]의 주미일본영사관에서 세츠코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 결혼은 세츠코의 개인적인 용모, 성품, 재능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 세츠코의 할아버지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는 [[아이즈 번]]의 [[다이묘]]였는데, [[메이지 유신]] 당시 유신에 반대하여 맞서 싸운 인물이다. 따라서 유신 이후 아이즈 번과 마츠다이라 가문은 상당히 처지가 좋지 못했다. 이러던 중에 세츠코를 황실의 비(妃)로 맞이한 것은 아이즈 번&마츠다이라 가문과의 화해 시도였고, 야스히토 친왕과 세츠코의 결혼으로 아이즈 번&마츠다이라 가문은 복권되었다. 본래 세츠코의 한자는 節子였으나 시어머니 [[사다코 태후]]가 같은 한자를 쓰고 있었기에, 결혼하면서 한자를 勢津子로 바꾸었다. [[이세 신궁]]이 있어 [[일본 황실]]과 인연이 있는 지역인 이세(伊勢)에서 勢를, 친정 마츠다이라 가문의 본거지인 [[아이즈 번|아이즈(會津)]]에서 津을 따와서 지었다고 한다. [[사다코 태후]]는 맏며느리 [[나가코 황후]]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어머니였으나 그 아래의 며느리들은 귀여워하였는데, 특히 둘째며느리인 [[세츠코 비]]를 귀여워했다고 한다. [[히나마츠리]] 때면, 세츠코 비는 시집올 적에 친정에서 가져온 히나 인형들을 장식하여 놓고 그것을 시어머니 [[사다코 태후]]와 함께 감상하며 즐거워했다고. 세츠코 비는 이를 두고 만년의 회상록 《은의 본보니엘(銀のボンボニエール)》에서 "아드님만 네 분이시니, 매년 즐거움으로 삼으신 일이었다."고 추억했다. 이는 사다코 태후가 자신과 생일이 똑같은 야스히토 친왕을 편애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들에게 시집 온 며느리이니 더욱 좋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츠코 비의 친정어머니 마츠다이라 노부코(松平信子)는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황실의 사돈이라는 배경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노부코는 [[가쿠슈인]] 동창회장을 지내며 황족들과 화족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했는데, 1959년 평민 여성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가 [[아키히토]] 황태자에게 시집올 때 이 힘을 이용하여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펼쳤다. 노부코의 언니이자 [[이방자]] 비의 친정어머니인 나시모토 이츠코(梨本伊都子)도 이에 가담했다.[* 이츠코는 평생에 걸쳐 [[일기]]를 썼는데, 이 당시 일기에 "이제 [[일본]]도 다 끝나 버렸구나!!"라고 썼다.] 세츠코 비도 친정어머니, 이모, 형님 [[나가코 황후]], 아랫동서 [[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 비, [[야나기하라 뱌쿠렌]][* [[다이쇼 덴노]]의 외사촌 여동생. [[다이쇼 덴노]]의 생모인 [[야나기하라 나루코]]는 뱌쿠렌의 [[고모]]가 된다.] 등과 함께 반대운동을 펼쳤고, 겨우 황실로 시집온 후로도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태자비]]는 [[미치코 상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혹독한 시집살이]]에 시달렸다. 노부코는 죽는 순간까지도 미치코 황태자비를 미워했지만, 다행히 세츠코 비와 키쿠코 비는 시간이 갈수록 차츰 감정이 누그러져 미치코 황태자비와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야스히토 친왕과 [[세츠코 비]]에게는 한번 아이가 생길 뻔했으나, [[2.26 사건]] 당시 야스히토 친왕이 세츠코 비와 함께 주둔지에서 [[도쿄]]로 올 때 추운 날씨에 세츠코 비가 몸을 해쳐 결국 유산으로 끝났고, 다시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자녀를 낳지 못했던 세츠코 비는, 대신 조카 [[아키히토]] 황태자의 자녀들인 [[나루히토]] 친왕, [[후미히토]] 친왕,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를 친손주처럼 귀여워했다. 특히 후미히토 친왕의 아내 [[키코 비]]에게는 자신이 오랫동안 맡고 있었던 결핵예방협회 총재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자신과 같은 [[귀국자녀]] 출신이며 친왕의 아내라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5년 [[세츠코 비]]가 사망함으로써 결국 지치부노미야 가문은 그대로 단절되었고, 아카사카 토구 고쇼 내 부부가 살던 저택은 세츠코 비가 생전에 귀여워했던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일가가 물려받아 거주하게 되었다.[* 세츠코 비 사망 전까지 후미히토 친왕 일가는 [[다카쓰카사 가즈코]]가 지내던 저택에서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