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쿠자 (문단 편집) === 해산된 주요 조직 === * 혼다카이(本多会) - 한때 고베에서 야마구치구미의 라이벌로 불리며 관서를 양분하던 대조직이었다. 야마구치구미와의 라이벌 구도로 1960년대 히로시마에서 교세이카이랑 손잡고 대리전쟁을 했는데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바로 [[의리없는 전쟁]]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신와카이가 혼다카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나 정상작전의 결과 해산되고 대일본 평화 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생존을 모색했으나 이후 점차 쇠락하여 최종적으로 1997년 해산하였다. 대부분의 산하 조직은 야마구치구미에 흡수되거나 신와카이 처럼 독자적으로 독립해나갔다. * 이치와카이(一和会) - 4대째 야마구치구미에서 후계자 싸움으로 야마모토 히로시를 중심으로 갈라진 파벌. 야마-이치 전쟁으로 4대째 두목 타케나카 마사히사를 암살하는 등 야마구치구미와 치열하게 전쟁을 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소멸했다. 야마히로는 조직을 해산하고 야마구치구미 본가에 가서 직접 사죄함으로서 목숨을 건졌다. 부회장이었던 가모다 시게마사[* 유명한 배우 [[스가와라 분타]]나 와카야마 토미사부로와 매우 친했고 한국의 전국구 두목인 조창조와의 교분도 깊었다. 그래서 한국 워커힐 호텔 카지노로 많이 놀러왔다고 한다. 야마구치구미 시절부터 무투파로 이름이 높았지만 계속 싸움을 하다가는 폭대법이 성립이 될거라고 우려하는 신중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1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는 무투파로 끝까지 항쟁을 주장했지만, 본인도 도박혐의로 구속되고, 가모다구미도 항쟁에서 희생자가 나오는 등, 결국 대세에 밀려 은퇴했다. 여담이지만 조직의 노래도 만들었는데 의외로 좋다고 호평이다.[[https://youtu.be/unTHdGSEXU4|#]] * 나카노카이(中野会) - 5대째 야마구치구미의 보조단체였으나 1996년 아이즈코테츠카이와의 항쟁에서 히트맨들에게 회장 나카노 타로가 습격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교토에 있는 이발소에서 습격 당했으나 경호원이 먼저 사격하여 암살자를 사살했는데 이런 중대한 사건에도 5대째의 부두목인 타쿠미 마사루가 나카노카이와 상의없이 멋대로 아이즈코테츠카이와 화해해버린다. 당사자를 제치고 윗선에서 화해를 해버리는건 전례가 없는 일이며, 나카노카이는 격분한 나머지[* 회장 나카노 타로는 아이즈코테츠카이와 타쿠미 마사루가 서로 공모해서 5대 두목의 심복인 자신을 제거할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믿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오사카의 타쿠미 마사루가 일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는걸 보고 음모를 직감했다고 한다.] 1997년 타쿠미 마사루 부두목을 암살해버렸다.[* 여담으로 사살 계획의 총지휘역인 요시노는 한국으로 도망쳤으나 이후 한국 아파트에서 의문사한다. 또 한명의 실행범은 고베에서 숨어지내다 쓸쓸히 병사한다. 나머지 실행범들은 도망쳤으나 이후 계속된 수사로 차례로 체포되어 실행범 3명은 징역 20년, 현장 사살을 지휘한 나카노카이 하부조직인 자이츠구미 두목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18~2020년 사이 실행범 3명은 모두 만기출소했는데 이때에도 이들의 대한 소식이 업계 관계자나 잡지에서 잠깐 화제가 됐었다. [[https://www.excite.co.jp/news/article/Weeklyjn_22639/|기사]]에 따르면 현재 야마구치구미도 2개로 분열되있고 20년만에 출소한 지라 세상이 너무 바뀌어서 정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실행범 중 한명인 Y는 출소때 고베 야마구치구미 소속 이케다구미의 후배가 마중을 나왔다고 하며 이 후배는 과거 나카노카이 소속이었던 이타리류카이(至龍会)의 일원으로 실행범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20년간 편지로 교제했다고 한다. 한편 타쿠미구미로서는 전 두목의 원수지만 20년전 일이고 실행범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한 일로 더 이상 원한을 갖진 않고 보복하진 않을것이라는 이리에 타다시 현 두목의 말이 있었고, 이 말이 Y에게도 전달됐다고 한다.] 이후 처음에는 집행부의 요청은 절연이었으나 와타나베 두목의 결정으로 파문 처리 됐다. 허나 타쿠미를 살해할때 옆에 있던 일반인 치과의사가 유탄에 맞고 사망한걸 계기로 집행부의 강행으로 절연됐다.[* 타쿠미 마사루 암살은 대담한 히트였는데 신고베 오리엔탈 호텔 티라운지 구석에서 타쿠미가 야마구치구미 최고 간부들이었던 기시모토 사이조, 노가미 테츠오와 점심 식사 겸 차를 마시고 있을때 히트팀이 나타나 권총을 마구 난사해 살해했다. 기시모토나 노가미는 무사였다. 훗날 기시모토는 그때를 회상하며 '총에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맞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여하간 뻥 뚫린 장소였던지라 운이 나쁘게도 옆 테이블에 민간인 치과의사가 앉아 있었고 유탄에 맞아 병원에 옮겨젔지만 이내 사망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독립을 선언, 한때 지정폭력단에 지정되었다. 그러나 타쿠미구미와의 항쟁으로 1999년 와카가시라 야마시타 시게오가 암살당하고 2002년 부회장 히로타 켄지가 암살당했다. 이후 계속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조직이 쇠락하여 2005년 해산했다.[* 이 나카노카이 내부 항쟁 사건은 야마구치구미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관망하던 고도카이의 츠카사 시노부가 6대째로 떠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타쿠미 마사루 암살 사건은 조직의 실권을 쥐고 있던 타쿠미와 갈등이 있던 5대 와타나베 두목의 양해를 받았다는 말도 있기 때문에 지금도 전모는 베일에 쌓여있는 일이다. 즉 추정하자면, 와타나베 두목과 타쿠미 부두목의 갈등으로 부두목이 두목의 심복 나카노를 제거하려 했고 이에 실패하자 와타나베 두목이 나카노를 부추겨서 부두목 타쿠미를 제거했다. 처음엔 파문 정도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사건의 전모를 알아챈 고도카이를 비롯한 집행부의 강요로 나카노는 절연당해 버림 받고 5대 와타나베 두목도 은퇴했다는 쿠데타 시나리오가 유력한 가설이다. 이러한 야마구치구미 내부 암투를 이용해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고도카이의 츠카사 시노부가 6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 밀려난 와타나베 두목의 출신조직인 야마켄구미와 고베파는 나고야를 중심으로한 고도카이의 전횡을 참다못해 결국 2015년 야마구치구미 조직 분열사태를 주도하여 조직을 깨고 만다.][* 나카노 타로는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하다가 2021년 1월 사망하였다. 5대 야마구치구미의 심복이었고 징역의 나카노 타로, 무투파 나카노 타로로 불렸을 정도로 거친 인물이었지만, 나카노 타로의 아들이 학교에서 싸움을 벌이자 직접 찾아가 아들이 폐를 끼쳤다고 사과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 교쿠토사쿠라이소우케렌코카이(極東桜井總家連合会) - 1921년 사쿠라이소우케는 아메토쿠렌코카이 계열의 데키야로 시작하여 1961년 아메토쿠렌코카이, 사쿠라이잇가, 세키쿠치잇가 등이 뭉처서 교쿠토아이사쿠라렌코카이를 만들었으나 계속된 내부 분열과 노선 갈등으로 1967년 다시 분열하여 사쿠라이소우케는 교쿠토사쿠라이소우케렌코카이를 만들었고 나머지 아메토쿠카이는 독립, 세키구치잇가는 교쿠토카이로 떨어저 나간다. 2004년 쿄쿠토사쿠라이소우케렌코카이는 간부들의 이적과 은퇴로 해산했다. 사쿠라이 종가 조직은 소규모 조직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 야마노카이(山野会) - 구마모토시의 지정폭력단이었으나 내분으로 쇠락하여 2001년 해산했다. * 야나가와구미(柳川組) - 재일교포 [[양원석]]이 1958년에 구성해 1969년에 해산한 조직으로 대표적인 구렌타이계열 야쿠자 조직이다. 제3대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로, 야마구치구미의 전성기를 여는 데 있어서 행동대장격 역할을 맡았다. 조직의 별칭이 살인 군단일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성으로 유명했으며 전성기에는 2차단체면서 조직원 수만 1,700명에 달했고, 준구성원을 포함하면 2,800여 명이었다. 이정도면 그냥 1차단체 규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엄연히 야나가와구미는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였다. 즉 야마구치구미의 무식한 규모를 짐작하게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 무서운 건 야나가와구미는 1차단체도 아닌 2차단체면서도 1964년 제1차 정상작전 당시 광역폭력단으로 지정된 전력이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야나가와구미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양원석이 은퇴하고 해산했으나 무단으로 해산했다고 하여 파문됐다. 그러나 조직원들이 대부분 야마구치구미 직참으로 승격한 걸 봐선 정상작전의 희생양으로 겉으로만 처벌을 취했다는게 중론이다. 양원석도 야마구치구미 원로로 죽을때까지 대우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