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김 (문단 편집) === [[3당 합당]]과 [[제14대 대통령 선거|92년 대선]] === 3당 합당의 배경은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87년 대선 이후에 치러진 88년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이 과반을 넘기지 못하게 되면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졌다. 양김과 [[김종필]]까지 비롯한 [[삼김]]은 때때로 공조를 하면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을 견제하며 대선 때 단일화 실패로 인한 평판을 회복했지만, 김대중이 제1야당 평민당의 당수로 야권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는 동시에 김영삼이 [[서석재]]의 보궐선거 후보자 매수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지자, 결국 [[3당 합당]]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기에 이른다. 3당 합당 문서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민주정의당]]이 합당 제안을 가장 먼저 보낸 대상은 김대중과 [[평화민주당]]이었다. 하지만 김대중은 거절했고, 그 이후 김영삼과 김종필이 OK라고 하여 3당 합당이 이루어진 것이다. 3개의 정당이 합쳐져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은 순식간에 정치적으로 김대중의 기반 지역인 호남을 고립시켜 버렸다. 13대 대선에서 각 후보의 기반 지역은 [[노태우]] TK, [[김영삼]] PK, [[김대중]] 호남, [[김종필]] 충남[* 충북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이겼다.]으로 지역주의가 상당히 두각을 드러냈는데, 여기서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연합하면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호남과 비교적 중립(?)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한 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14대 대선|92년 대선]]이 다가왔다. 이 대결은 '''[[민주자유당|거대 여당]]'''을 이끄는 김영삼과 '''[[민주당(1991년)|통합 야당]]'''을 이끄는 김대중의 대결이었다. 이 선거는 60년대 이래 군인 출신이 없는 순수 민간인 후보끼리 벌인 대결이라는 점이 특별했다. 또한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 결성됨에 따라 대선에 앞선 총선에서 31석을 획득하며 제 3당으로 부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3당 합당에 반발해 [[통일민주당]]에서 탈당한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 출신의 정치인 박찬종까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선거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각 후보의 지역을 기반으로 4개로 나눠진 모양인 것에 반하여,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대체로 영·호남의 대결 구도였다. 김영삼 후보의 지지 기반은 3당 합당으로 인해 전통적 지지 기반인 PK에서 TK를 더해 영남 전체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영삼 후보가 충청도와 강원도에서도 이겼지만 경남(72%)나 경북(64%)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지지(30%내외)를 보냈기에 완벽한 기반은 아니다. 거기다 김영삼은 권력을 잡은 후 군부 세력의 기반인 경북 정치인을 숙청하며 한나라당이 경북에서 고전하는 일까지 있었다. 90년대~2000년대 초반의 한나라당은 PK 및 민주계의 개혁 세력이 장악할 때라 군부 및 TK가 김영삼/이회창에게 극심한 반감을 보여 선거에서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서서히 TK로 넘어간 건 이명박근혜 시절 이후.] 그리고 김대중 후보는 13대 대선과 지지 기반이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초반의 구도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접전이었다. 정확히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1~2위를 치고받고, 정주영과 박찬종이 3~4위를 두고 다투었다. 그러던 찰나 [[초원복집 사건]]이 터지면서 영남권의 결집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김대중 후보를 8.2% 차이로 여유롭게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김대중 후보는 이때를 기점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이후 집권하게 된 [[민주자유당]]과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축출, 금융실명제 등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으며, 이에 힘입어 YS를 재미있게 풍자한 'YS는 못말려'가 베스트 셀러에 등극되는 등, 김영삼 정부는 최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사고 공화국]]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사고들이 생기면서 지지율을 깎아 먹다가 결국 [[1997년 외환 위기|IMF사태]]로 지지율 6%까지 추락하기에 이른다.[* 이 최저 지지율 기록은 박근혜가 4%로 새로 경신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