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다이강 (문단 편집) == 기타 == * 자신의 조국 대만에서는 상당한 슈퍼스타이다. 현재 [[천웨인]], [[왕보룽]]과 함께 대만 야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SC 프리미어 12]]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뿐만 아니라, 연령별 아시아 지역대회인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까지 와일드 카드로 출전했다. 양다이강의 포지션인 중견수는 외야수비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이라 매우 중요하며, 일본리그 선수라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달리 국대차출에 구단의 반대 같은 걸림돌이 특별히 없으며, 일본선수라 시차도 대만과 1시간밖에 없어서 시차적응 문제도 덜하다. 또한 대체자원이 있는 투수진과는 다르게 일본리그 주전급 수준의 중견수는 이 선수뿐이다. 2017 WBC 출전 요청은 개인적인 시즌 준비를 위해 거절하기도 했지만 그 밖에는 대부분의 국가대표 차출에 응하여 팀의 중요한 전력이 되고 있다. * 대만의 [[소수민족]]인 [[아미족]]([[대만 원주민]])의 유명 야구인 집안의 일원이다. [[CPBL]]을 호령했던 강타자 [[장타이산]]의 사촌이고, 큰형인 [[양야오쉰]]은 대만에서 대학을 나와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었다. 사촌동생 [[장이]](張奕)도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가 현재는 육성선수로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고 있다.[* [[지바 쇼크]]때 대만 국대의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프로에 가지 못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둘째형도 일본에서 활동한 야구선수로,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독립 리그에서 좀 뛰다가 대만으로 돌아갔고, CPBL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되지 못하면서 야구를 접었다. 즉 막내가 형들보다 훨씬 대성한 것. *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陽岱鋼. 가타카나 대신 한자로 등록명을 쓰지만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한자로 이름을 쓰고 요 다이칸이라고 읽는다]].[* 성은 일본식 한자음, 이름은 일본식 중국어 독음을 쓰는 희한한 독법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NPB 소속 팀의 유니폼에 붙는 이름도 YANG이 아니라 'YOH' 다. 초창기 일본 리그에서는 동양인 선수들의 이름을 일본식 한자음으로 표기했다. 초창기 일본프로야구의 대만계 선수들인 우창정(呉昌征)이나 [[왕정치]](왕전즈)가 각각 고 쇼세이와 오 사다하루로 불린 케이스, 이후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일본에 진출한 [[백인천]], [[궈타이위안]], 궈위안즈 등이 각각 일본식으로 하쿠 진텐, 가쿠 타이겐, 가쿠 겐지로 불린 경우들이 있다. 천타펑→[[타이호 야스아키]]처럼 아예 일본식 이름을 만들어 등록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이후 [[선동열]]이 최초로 한국식 발음으로 등록명을 등록한 이후엔 일본 진출 이후에는 동양계 선수들도 다른 외국인 선수들처럼 현지식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대만 선수들도 [[천관위]]나 [[천웨이인]], 혹은 그의 형인 [[양야오쉰]]처럼 자국 발음으로 등록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다만 딱히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일본 선수생활 초창기에 '가쿠 슌린'이라는 일본식 발음을 사용했던 세이부의 [[궈쥔린]] 처럼 여전히 일본식 독음으로 등록명을 정하는 경우도 있고,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등록명이 '삼손 리'였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처럼 아예 별명을 등록명으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고. 참고로 이 중에서 궈위안즈는 1989년 9월에 실제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적이 있었고, 일본프로야구는 딱히 외국인뿐만 아니라 일본 선수들 중에서도 [[T-오카다]]나 [[G.G.사토]] 등처럼 별의 별 등록명이 다 있다. 물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양다이강처럼 본명을 일본식으로 읽거나, 외국인 선수의 경우 미들네임을 제거하는 것 정도 외에는 이러한 등록명도 허가가 안 되었지만.] *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토 요시히로]]의 선수생활을 끝장내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1년 9월 롯데와의 경기에서 이토를 상대할 때 플라이아웃을 당했는데 이때 스윙 도중 배트가 부러지면서 부러진 배트조각이 날아가서 이토의 정강이에 깊게 박혔다. 결국 이토는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도 배트조각에 찔린 왼쪽 다리를 감싸는 버릇이 생겨서 투구폼이 망가져버렸고, 결국 2011년까지 시즌 30홀드도 기록하면서 주축 불펜투수로 활약하던 이토는 2012년부터 2군 지박령이 되었다가 2016년을 끝으로 은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