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제(수) (문단 편집) ==== [[도덕]]적 결함 ==== 신하들도 양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간언을 했다가는 양제의 분노를 사서 처형되었던 터라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수양제의 [[신하]]들인 [[관롱집단]]은 전통적인 귀족이자 [[북주]]-[[수나라]]-[[당나라]] 시절 내내 황권을 가볍게 여기고 여러가지 만행을 일삼은 집단으로서 부황 [[수문제]]조차 이들을 통제하지 못해 재위 내내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수양제 시기때 그들은 '''양제의 말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원래 황제라는 자리가 상당한 격무를 매일 같이 수행하는 직위임에도 양제가 매달 놀러 나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양제의 황권이 어마어마했다는 뜻이다.[* 수양제 만큼의 엄청난 황권은 이후 [[후량]]의 태조인 [[주전충]]외에는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양제는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어서 늘 자신의 실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인물에 대해 시기를 하기도 했다. 가령 수 왕조 초기에는 설도형(薛道衡)이라는 가장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그가 지은 <석석염>(昔昔鹽)이라는 시가 있었는데, 그 시는 특히 후반부에 있는 대목이 특히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어둑한 창문엔 거미줄이 드리우고, 빈 들보에선 [[제비]] 집 진흙이 떨어지네'[* 暗牖懸蛛網 空梁落燕泥(암유현주망 공량낙연니)] 그러나 수양제는 이전부터 연애시 몇 수를 지었는데, 자신의 성격상 다른 사람이 시를 써서 이름을 날리면 몹시 기분 나빠했다. 양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는 설도형의 이 시를 보고 시기를 했고,[* 다만 맨 처음부터 싫어한 것은 아니었으나 설도형이 양제가 즉위했을 때 수문제 양견의 공로를 찬미하는 글인 <고조문황제송>(高祖文皇帝頌)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되었다. 특히 양제는 설도형이 옛 군주인 부황을 찬양하여 현 군주인 자신을 헐뜯는다며 그를 싫어했다.] 결국 누명을 씌어 설도형을 살해했다.[* 자살하라고 명했지만 겁에 질린 설도형이 실행에 옮기지 못하자 양제가 보낸 병사들이 설도형을 목졸라 죽였다.] 그 뒤 양광은 설도형의 시신을 보면서 "[[고인드립|그래, 지금도 '빈 들보에선 제비집 진흙이 떨어지네'라고 읊을 수 있겠는가?]]"라며 모욕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