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제(수) (문단 편집) === [[고구려-수 전쟁|고구려 정벌]] === 양제는 수많은 실책을 범해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고구려]] 정벌'''이다. 양제는 주변국들에게 입조와 조공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면 대대적인 정벌을 펼쳐 굴복시켜왔다. 북쪽의 [[돌궐]], 서쪽의 서역과 [[토욕혼]](土谷渾), 남쪽의 베트남을 정벌하여 각국의 군주들이 자신에게 입조하게 하는 등 북쪽, 서쪽, 남쪽으로의 원정을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 수양제가 여기까지만 했으면 과도 있지만 그래도 공도 어느정도 존재하는 만큼 [[무제(전한)|한무제]]나 패륜으로 집권한 [[영락제]]나 [[세조(조선)|세조]] 정도의 평가는 받을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직 동쪽의 [[고구려]]만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패기|입조 및 조공을 거부했다.]]'''[* 입조와 조공을 거절하는 것은 "너는 황제가 아냐"라고 대놓고 말하는 격으로 [[삼국지]]에서도 [[유표]]가 [[헌제]]에게 이렇게 행동했다.] 과거 양광의 아버지였던 [[수문제]]도 고구려를 입조시키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문제는 고구려에 서한을 보내 조공하라며 압력을 넣었지만 고구려의 [[영양왕]]은 거부했고, 오히려 '''[[수나라]]의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했다.''' 분노한 문제가 수•륙군 300,000명을 동원해서 고구려 정벌을 시도했지만 역병과 태풍으로 손해만 보고 끝났다. 이미 한번 격퇴해내서 기세등등해진 고구려가 양제의 요구에 대해 그렇게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고구려]]가 조공을 거부한다면 이것은 다른 속국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고구려처럼 대항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고구려를 반드시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양광은 [[돌궐]]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고구려]] 사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대놓고 그 사신에게 고구려 태왕의 입조와 조공을 요구했으며 이를 어길 시 고구려를 정벌하겠다고 위협하는 행태를 보였다. 당연히 사신에게 보고를 받은 고구려의 [[영양왕]]은 이 요구가 부당하다고 여겨 거절했다. 이에 양제는 수 차례 사신을 보내 조공과 입조를 행하라며 압력을 넣었지만 [[영양왕]]은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격분한 양제는 아버지 문제가 축적한 모든 부를 탕진해서 고구려를 침공하고자 했다.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한 598년 이후 14년 만이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3차에 걸친 대원정이었다. 특히 1차 정벌에서는 '''113만 대군'''[* 말이 113만 대군이지 이 당시 수나라 군대는 저 113만 대군에 보조 인력(각종 물자를 나르는 짐꾼 등)까지 딸려 있어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이다.]을 동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