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제(수) (문단 편집) ==== 제2차 공격 ==== 그러나 양제는 [[고구려]] 원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613년 3월 양제는 350,000명의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또다시 침공했다. 지난번의 패배를 되새긴 양제는 이번에는 별동군을 조직하여 공격을 시도했다. 도하한 수나라 군사는 [[요동성]]보다 토성을 높게 쌓아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비슷하게 쌓아올려 높이상의 이점을 줄이기만 해도 공성 측에서는 이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과연 토성을 쌓을 정도로 가성비나 효과가 좋냐는 건데 평야에 산 하나를 쌓는 것인 데다가 쌓아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고작 화살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쏠 수 있다는 정도인 만큼 당연히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다.] 요동성의 고구려 군사들은 이러한 수나라의 화살 세례에 쉽사리 대항을 못했고, 양제는 효력이 있다고 판단해 계속적으로 화살로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나라]] 측에서 문제가 터졌다. 양제의 폭정을 보다못한 수나라의 예부상서 [[양현감]]이 100,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백성]]들이 폭정에 저항하면서 '죽음의 땅 요동으로 가지 말자'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를 따랐다. 양현감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는 황제의 본가로, 억만금의 재산이 있으며 관직 또한 이미 상주국에 이르렀거늘 무슨 부귀를 더 바라겠는가? 지금 9족이 몰살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폭군에 저항하고자 일어섰다. 실로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여 백성들을 위하여 기병한 것이다. 그러자 양제와 함께 이 소식을 들은 양현감의 친구 곡사정은 이번 반란때문에 자신에게 미칠 일을 두려워하여 고구려에 투항했다. 양현감의 반란에 당황한 양제는 우왕좌왕하다가 [[곡사정]]이 [[고구려]]에 투항하자 급히 퇴각을 결정했다. 곡사정의 보직은 병부[[시랑]]이었는데 이는 군사 행군, 보급, 작전을 총괄하는 군사부문 최고 직책으로 현대적인 의미로는 국방부 차관에 가까운 직위였다. 그런 인물이 고구려에 투항해 작전 기밀이나 군대 내 상황 등이 모두 드러났으니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기에 고구려 군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식량과 무기를 모두 버리고 퇴각을 시도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못해 고구려군이 뒤늦게 추격했고 수나라 군사 수천 명이 전사했다. 그나마 제1차 때에 비해 피해는 훨씬 적었고, 고구려도 적잖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