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엄기영 (문단 편집) === MBC 사장 === [[파일:external/cphoto.asiae.co.kr/2008031907271769489_6.jpg]] ---- [[최문순]] 전 사장의 임기가 끝나가던 2008년 1월 23일, 차기 MBC 사장 공모에 나가기 위해 뉴스데스크 앵커 하차를 선언했다. 2월 1일에 신종인(당시 부사장), 구영회(당시 삼척MBC 사장)와 함께 최종 후보로 올라 개별 인터뷰 및 무기명 비밀투표를 거친 후, 15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이 2명을 제치고 선임되어 29일에 정식 취임했다. 2009년까지는 [[한국방송협회]] 회장도 겸직하였다. 그의 사장 재임 시절 [[PD수첩]]에서 [[광우병 논란]]에 대해 다뤘다. 논란이 심하고, 현재 거짓으로 밝혀진 주제에 대해 다루다 보니, 한나라당에서 MBC측에 항의를 했다.[* 공식적으로 MBC의 최대 주주는 특수법인 [[방송문화진흥회]](약칭 방문진)이며 이사장 및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한다. 그런데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방통위원은 국회의석 비율에 따라서 추천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이 공영방송에 개입할 수 있다. KBS도 마찬가지로 이사회 의원의 대다수를 정부 여당과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물이 맡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역시 개입이 가능하다.] 심지어 2007년에 생긴 MBC공정방송노조(2노조) 측이 당사 보도가 좌편향이라며 비난의 각을 세운 데다 극우 단체까지도 MBC를 '좌파 선동 방송'이라며 항의 시위까지 하고 보수 네티즌까지 덩달아 '좌비씨'라고 비난했다. 2009년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 1943년생. 1969년~1985년에 MBC PD로 근무했고 1987~2008년에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교수 시절에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1990~1993), MBC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2000~2001)을 지내며 친정인 MBC와 교류했다.]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자리에 취임한 후 사퇴 압력이 더해졌고, 결국 2009년 12월 초에 엄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사표를 제출하는 일이 발생한다. 방문진은 엄 사장 및 일부 임원들의 재신임을 천명했고, 김세영 부사장(편성본부장 겸임), 이재갑 TV제작본부장, 송재종 보도본부장, 박성희 경영본부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2010년 2월 8일에 임기를 1년이나 남겼음에도 2달만에 다시 MBC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002081137001&code=940705|#]] 뉴 MBC 플랜이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책임이라고 알려졌다.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0912091014233&mode=sub_view|#]] 엄기영이 사장직에서 물러나자 [[MBC/논란 및 사건 사고|MBC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그의 사퇴를 시작으로 많은 아나운서와 기자들[* 김주하, 박혜진, 오상진, 최윤영, 문지애, 서현진 등 20명 가까이 떠났다.]도 파업 등으로 줄줄이 MBC를 퇴사했다. 그의 사임 이후 며칠간은 [[김종국(기자)|김종국]] 기획조정실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이후 김재철의 후임 사장으로 임명된다.][* 김세영 부사장이 사직하는 바람에 부사장이 없었다. 그래서 3인자격인 김종국 기조실장이 대행을 맡은 것.] 당시 [[MBC충북|청주문화방송]] 사장이었던 [[김재철(언론인)|김재철]]이 선임되었다. 이후 2010년에 방송된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에 참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