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단 (문단 편집) == 어원 및 역사 == 우리말에서 "여단"이라 번역되는 [[프랑스어]]나 [[영어]] 등의 "brigade" 및 그 직접적 어원인 [[스웨덴어]]의 "brigad"는 원래 그 어원상 "싸우는 사람들", "전투 집단" 정도의 의미로, "[[브레이크#s-2|break]]"와 [[동원어]]인데, 그 뜻 중에서도 "깨다.", "부수다.", "싸우다."와 연관되어있다.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30년전쟁]] 당시 처음 창설하였다. 연대급 부대가 최상위 편제였던 당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병]], [[기병]], [[포병]]을 비롯한 제병과를 단일하고 보다 효율적인 지휘체계 아래에 두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때의 여단(Brigad) 개념은 [[현대]]의 사단과 같은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는 동시기 [[프랑스]]에 영향을 주었는데, 다만 제병연합부대였던 스웨덴의 것과는 달리 단일병과부대로 출발하였다. 30년전쟁 후반기 들어서 프랑스에서는 연대 2~3개를 모아 단일병과로 편성된 1개 여단을 만들었고, 이러한 여단 다수와 포병 및 병참부대를 붙여 만든 사단 개념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얼마간 여단과 사단 개념이 공존하다가 대규모 국가들은 사단 편제를 채택하였고, 반면 소규모 국가들은 오랫동안 여단 중심으로 군을 편성했다.[* 각각 사례를 들자면, 프랑스군은 [[나폴레옹 전쟁]]기에 이것도 모자라서 [[야전군]]과 사·여단 사이에 새로이 [[군단]] 편제를 만들었고, 반면 미군은 [[미국 내전]] 당시 각 야전군 예하 부대들을 여단으로 편성하였다.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상설화한 대규모 군대를 거느리기 전에는 평시에 최소한의 병력과 조직만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사단 중심 편제는 약 100년 전까지 유지되었다. 거의 모든 사단은 2개 보병여단을 주력으로 예하에 4개 또는 6개 보병연대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의 사단예하 3개 전투연대+포병연대 개념은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독일군]] 군사고문단에 의해 오스만 제국군에 처음 시험적용되었으며, 이후 전 세계 보병사단 편제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단 개념은 바로 위에 나오듯이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3각편제 사단 개념이 등장하면서 금방 사라졌고, 대신 구스타프 방식 여단의 발전형이랄 수 있는 현대적인 독립여단 개념이 재등장하여 사단 개념과 함께 주요 전술제대 편제로서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애초에 정의가 여러 가지라 그런지, 일반적으로 [[서유럽]]에서 유래된 군편제 중에서도 특이하게 '여단'만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같은 시대라도 국가에 따라 규모나 편성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같은 '여단'이라고 하더라도 각국 군대의 교리나 실정 등에 따라 편제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개념으로, 상급 부대로 보자면 여단과 비슷하게 분견군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분견군은 야전군~집단군 사이에 존재하는 부대 규모로, 여단과 같이 부대 규모가 상위부대 혹은 하위부대로 툭 집어 부르기 어려운 경우에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홀리트 분견군이 있었다. [[1950년대]]가 되어서 소련의 충격군들은 분견군으로 바뀌다가 전략군, 야전군으로 바뀐 끝에 그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