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몽전쟁 (문단 편집) ==== 제7차 침략 - 몽골군의 상륙 작전 ==== * '''일시: 1255년 9월 ~ 1256년 6월''' * 요약: 몽골군의 강화도 상륙을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격퇴했다. 몽골은 [[1255년]] 2월부터 8월까지 지속적으로 국지적인 약탈을 자행하다가 9월에 또다시 [[자랄타이]]를 대장으로 삼고, 인질로 갔던 [[영녕공]]과 [[홍복원]]을 대동하며 침입하여, 전라도 전역을 쑥밭으로 만들고 갑곶 대안(甲串對岸)에 집결하여 강도(강화도)에 돌입할 기세를 보였다. 그러나 마침 이전에 몽골에 갔던 [[김수강|김수강(金守剛)]]이 몽케 칸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하여 몽골군은 서경으로 일시 철수했다. 그러나 몽골군의 산발적인 공격은 끊이지 않았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 전투(8승 2패) * 대원령 전투: 충주성을 지나쳐 근처의 대원령(계립령, 하늘재)를 지나다가 다인철소 천민들의 습격으로 후퇴했다. 이로 인해 다인철소의 천민들은 모두 익안현으로 승격해 일반 백성이 되었다.(1255년 10월 2일) <승> * 조도 해전: 몽골이 본격적인 수군 운용을 시작한 전투이다. 그러나 지역 해적에게 패배했다. (1255년 12월 29일) <승> * 아주 해전: 한취와 고려 수군의 함선 9척이 전멸했다.(1256년 3월 / 지휘관: 충주도 순문사 한취) <패> * 입암산성(笠巖山城)에 몽골군이 쳐들어 왔으나 송군비(宋君斐)가 정예병을 이끌고 싸워 적을 패배시켰다.(1256년 3월 28일) <승> * 의주(義州)에서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급히 보고하기를, “별초(別抄) 300명을 보내 몽골군 1,000명을 공격했습니다.”라고 했다.(1256년 4월 17일) <승> * 인주(仁州) 땅 소래산(蘇來山)에서 대부도(大府島)의 별초(別抄)가 밤에 몽골군 100여 인을 공격하여 쫓아냈다.(1256년 4월 19일) <승> * 제3차 충주성 전투 → 대림산성 전투 → 덕주산성 전투: 몽골군이 충주성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또 산성(山城)을 공격했다. 관리와 노약자들은 공포에 질려 방어하지 못하고 [[월악산]]까지 숨어들었는데 기상 악화로 몽골군 별동대가 후퇴했다.(1256년 4월 29일) <패> * 압해도 해전: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골군 함선 70척을 압해도(현 [[신안군]])의 주민(해적)들이 '''포차[* 여기서 말하는 포차는 [[투석기]]다.]를 실은 전함'''으로 철수시켰다.(1256년 5월) <승> * 온수현 전투: 수군 200명의 상륙 작전이었다. 몽골군 수십 명을 죽이고 주민들을 구출했다.(1256년 6월 23일 / 지휘관: 이천) <승> * 애도 전투: 몽골군 60여 명이 애도(현 [[고흥군]])에 침공하였는데 별초군이 모두 잡아 목을 베었다.(1256년 10월) <승>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