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의도공항 (문단 편집) == 상세 == [[1916년]] [[3월]]에 [[일본 제국|일본]] 당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당시의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현재의 [[여의도]]) 일대에 간이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다.[* 당시 여의도 일대는 한강에 반도처럼 튀어나와있던 지역이었는데, 일제가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영등포쪽으로 하천 길을 내어 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9월에 활주로와 격납고를 완공하고 10월에 개장하여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단순 비행장 정도의 취급을 받았으나 이후 만주-조선-일본을 잇는 항공 수요가 크게 늘자 1929년에 비행장을 확장하여 여의도공항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이 공항을 경성항공사가 이용했다. 이곳에 처음으로 항공기 다운 항공기가 이착륙했던 것은 [[1920년]]의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 페라린 대위 외 1명, [[붉은 돼지]]에 나오는 페라린 중위가 이 사람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가 일본과의 우호 친선을 목적으로 비행하게 되었다. 본래대로라면 이들은 [[신의주]] 비행장에서만 한 번 착륙할 계획으로, 서울 상공에서는 선회비행만 몇 번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항공기를 하늘에서도 보기 힘든 1920년대라, 서울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결국 여의도 비행장에도 착륙, 항공기 이착륙을 선보였다. 예정에 없던 일종의 서비스 차원의 착륙이었으나 항공기에서 내리는 조종사에게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운집한 시민들이 선물과 꽃다발까지 건네자 조종사는 매우 고마워했다고 전해진다. 첫 번째 조선인 조종사인 [[안창남]]도 이곳에서 이착륙과 선회비행을 선보였다. "떴다 떴다 ~~비행기~~안창남"이라는 노래가 널리 유행할 만큼 이 역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가 이착륙한지 불과 2년 뒤인 [[1922년]]의 일이었다. 특히 무엇보다 이 이착륙에서, 안창남이 몰고 온 애기(愛機)에는 조선반도가 새겨져 있어 감동을 더했다. 안창남이 이착륙을 선보인 7년 뒤, 여의도 비행장은 정식 비행장으로 개장했다. [[한강]]에서 [[홍수]]가 나면 섬이 잠겨버린다는, 비행장으로선 상당한 악조건이었으나 [[서울]]에 위치한 비행장이라는 접근성은 크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일본]] - [[조선]] - [[만주]]를 잇는 항공수송의 허브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고질적인 침수 문제 탓에, [[강서구(서울특별시)|김포]]에 비행장이 건설된 뒤로도 번갈아 이용되었다. 김포비행장이 있음에도 완전히 기능을 김포로 이전하지 않은 것은 압도적인 접근성 때문이었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공군|공군]]이 창설된 곳도 바로 이 곳이였다.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 234호에 따라 공군이 창군되었을 때,[* 본래 [[대한민국 공군|공군]]은 육군에 예속된 항공부대였다. 당장 [[미군]]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육군과 해군에 각각 항공대가 별도로 존재했으며, 독립된 군으로 공군이 존재한 나라는 의외로 적었다. 본격적으로 독립된 공군이 등장한 시기는 2차대전 말엽~이후이다.] 1천여 명의 장병과 20여 기의 경항공기로 구성된 공군 최초의 [[비행단]]이 존재했다. 1953년에는 국제공항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시기의 여의도 공항은 현재의 여의도 부지를 거의 모두 사용하는 공항이었다. 하지만 잦은 한강의 범람으로 공항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결국 1958년 1월에 민간공항기능을 [[김포국제공항]]으로 이전하고 공군기지로만 사용하게 되었으며 1971년 2월에 공군기지 기능을 성남에 있는 현재의 [[서울공항]]으로 이관하면서 폐쇄되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159072|1968년 4월 신문기사]]에 따르면 공군기지는 과천으로 이전할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선 서술처럼 홍수가 나면 대피해야 하는 악조건이 존재했지만, 뛰어난 접근성 덕에 20년 넘게 공군의 최전방 기지로 운용되었다. [[2009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의도공원에 공군 창설 60주년 기념탑이 건립되기도 했다. 이후 군 공항으로서의 기능은 성남시의 [[제15특수임무비행단|서울기지]]로 이전하였다. [[파일:attachment/1316879088_3yRgiGdm_y2.jpg|width=300]] [[1974년]]에 촬영된 여의도 광장. 상단의 교량은 서울대교 (현 [[마포대교]])이며, 여의도공항 및 공군 기지의 [[활주로]]를 활용한 곳이기에 북단 부근에 [[B-29]] 폭격기 같은 군용 비행기를 전시해 놓기도 했다.[* 참고로 사진의 거대한 몸집의 [[B-29]] 폭격기는 1970년대에 미 공군에서 오버홀하여 한국에 정태 보존용으로 넘겨 준 기체였다. 이 기체는 현재 경남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전 세계에 딱 26대 남아 있는 B-29 중 유이하게 미국 밖에 존재하는 기체인데, 다른 하나는 영국에 있다. 이외에도 지금의 [[서울국제금융센터]] 자리에 종합안보전시장이 있었으며, 1995년 종합안보전시장 전시품이 경남 사천으로 이전한 뒤에는 그 자리에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으로도 쓰였다. 참고로 저 [[B-29]] 옆에 있는 거대한 4발 수송기는 C-124 글로브마스터 II(C-124 Globemaster II)다.] 이후 여의도 공항 부지를 일부 활용하여 만든 것이 [[여의도공원|여의도광장]]과 [[여의대로]]다. 특히 여의도광장은 [[박정희]]가 한반도에서 유사시 비행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이|그러나 이후에도 이곳이 비행장으로 쓰인 적은 없었고]] [[국군의 날]] 기념식이나 [[국풍81]] 등의 관제행사가 드넓은 여의도 아스팔트 광장에서 열리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