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의도순복음교회 (문단 편집) == 역사 == [[1958년]]에 서울 [[은평구]] 대조동 공동묘지 근처에 미군부대 낡은 천막을 치고, 5명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조용기(목사)|조용기]] [[목사]][* 설립 당시에는 [[전도사]]였다.]와 최자실 목사[* 마찬가지로 설립 당시에는 [[전도사]]였다. [[조용기 목사]]의 [[장모님|장모]]이기도 하다.]가 설립했다. 그 5명도 최자실 전도사의 자녀들[* 최자실 목사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선술한 김성혜 총장은 조용기 목사와 결혼하였고, 처남인 김성수, 김성광 두 형제 역시 목사를 하고 있다. [[김성광]] 목사에 대해서는 후술.], 비를 피해가던 할머니 한 명이 시작이었다. 이후 1년 뒤인 [[1959년]] 천막교회를 확장하고, [[1961년]] 지금의 [[서대문구]] 충정로우체국 맞은편으로 교회를 이전해 [[1962년]] '순복음 중앙 부흥회관' 건물을 준공하여 입당한다.[* 이후 이름을 '순복음 중앙교회'라고 바꿨으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서대문교회 시대'라고 칭한다. [[서대문역]] 3번 출구 앞쪽에 있었으며, 돈의문 3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으로 인해 2017년에 철거되었다.] 교인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1968년]] 당시 모래벌판이던 [[여의도]]에 새 교회 건물[* 계획 당시 새 건물의 이름은 '여의도 민족제단'이었다.]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그 때 허허벌판인 데다가 [[섬]]이기까지 해서 교통마저 불편했던 최고의 불모지인 여의도에 교회 건물을 세운다. [[조용기 목사]]는 당시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 [[김현옥]] 시장과 만나 기존의 서대문-마포 일대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여의도]] 개발에 편승하는 차원에서 시로부터 부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김 시장은 당초에는 100,000평을 제시했으나, 조 목사는 30,000평, 다시 3,000평으로 겨우 깎아 구입하고 대금은 할부(...)로 갚아나가기로 한다. 평수를 깎은 것은 당시 교인들이 1만 명을 바라보는 규모이긴 했으나 서민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였기 때문에 건축헌금만으로 부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순복음중앙교회는 일찌감치 강북 일대에서 자리잡은 [[새문안교회]], [[정동교회]], [[영락교회]] 사이에서 겨우 목회를 하고 있었다. 당시 이북의 실향민과 정재계 인사들이 주류이던 강북 지역 교회를 뚫고 대조동 천막교회에서부터 가난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주로 목회를 했기 때문에 교인 수는 많을지언정 재정 규모는 턱없이 부족했다.] [[2020년]]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순복음중앙교회가 [[여의도]]로 성전을 이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서울특별시 행정부시장이었던 차일석 씨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 중 한 회고에서는, 차일석 부시장의 모친 김사라 권사의 지인인 노 아무개 장로를 통해 그러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밝힌다. [[https://m.youtube.com/watch?v=5NWSXpgE0uA|2018년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60주년 감사예배 및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대성회를 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