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자대학교 (문단 편집) == 인식 == 설립 이념 특성상, 연혁이 굉장히 긴 학교들이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교육, 특히 학교 교육은 남성들만이 받을 수 있었다. 여성 중에서는 극히 일부 상류층 출신만이 가정 내에서 교육을 받았고,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길게 갈 필요도 없이,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공부해서 뭐하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근대에 들어 이러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반발하여 여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여학교에서 공부한 (소수의) 여성들은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로 가정에만 머물던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와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여학교, 여자대학은 [[페미니즘]] 운동의 전진기지로 취급받기도 한다. 점점 여성교육에 대해 부정적이던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아들뿐 아니라 딸도 학교에 보내고 서서히 대학에도 보내는 시대가 되었다. 다만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낮았다([[가난]]+[[남존여비]] 때문). 또한 남녀 구별이 엄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 사회 때문에[* 옛날에는 대다수의 중ㆍ고등학교가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누어져 있었고, 공학이라도 분반인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도 고학년부터는 남녀분반을 했다. 또한, 남녀 학생이 자유로이 연애하는 것을 매우 나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며, 이로 인해 당시에는 결혼도 대부분 집안 어른들이 정해주는 대로 했다.], 딸을 대학에 보내더라도 남녀공학[* 말이 [[남녀공학]]이지 애초에 여성이 거의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남성만의 공간이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최고의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조차 여성의 입학을 불허했었고, 그 후에도 배움의 기회를 받는 여성조차도 입학, 경쟁에 있어서 남성에 비해 불리했기 때문이다.]보다는 여대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여대생', '여대 졸업생'은 당시로서는 '소수'의 '배운 여성'이었고, 집안 역시 제법 유복하고 신식이라는 표시였다. 때문에 아직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적었던 옛날에는, (여대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여대생이나 여대 출신 인물은 '좋은 신붓감'으로 선호되기도 했고, '여대'를 '시집 잘 가기 위한' 준비과정쯤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1964년부터 1982년까지 [[강원도]] [[춘천시]]에 존재했던 [[성심여자대학교]]에는 유복한 집안의 딸들이 많이 재학했는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예절교육 등을 받으며 [[숙녀]]로서 교양을 쌓았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성심여자대학교]] 문서 참조.][* 오늘날과 달리 결혼 연령이 훨씬 낮던 시절이라, 여대생의 경우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고, 그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재학 중에 결혼하여 대학을 중퇴하는 여대생도 많았다. 물론 옛날이니만큼, 본인의 의사에 따른 연애결혼은 극히 적었다. 중매 내지는 집안 어른들이 정해주는 대로 결혼하는 일이 많았다.] 소위 말하는 '시집을 잘 간다'는 소리가 나온 배경이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대의 그런 이미지나 교육 방식[* 90년대 이후가 되고서도 가사 과목이 필수로 개설되어 있다든지, 순종적인 유교적 여성상을 주입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을 하는 곳이 꽤 있었다.]에 반발하여 여대를 가려 하지 않고, 여대 출신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는 여대가 입학도 남녀공학보다 쉬운 편이었고, 학점 따기도 어렵지 않았던 탓, 결혼하기 위한 교양 과정 쯤으로 여기는 풍조 탓도 있었다. 하지만 또 그런 점과 다르게, 여대에서 많은 여성 1호, 성공한 여성 등이 배출되기도 했다. 또한 아직 학교에도 성차별이 많이 남아 있던 시절에[* 예를 들어, 옛날 남녀공학 학교에서는 반장/회장은 여자가 될 수 없고 무조건 남자, 부반장/부회장은 여자라고 정해 놓은 곳이 많았다. 사실상 '여자는 남자보다 아래. 늘 남자 밑이고 남자 다음'인 존재라고 어릴 때부터 주입한 셈이다.], 남녀공학과 달리 여대에서는 여학생들이 학생회장, 임원, 대표 등을 모두 맡아 주도적으로 일하며 리더십을 쌓을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남녀 분리 교육[* 예외도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여학생이 예과에 바로 진학할 수 없었지만 선과(편입)를 통해 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모윤숙]]이 있다.]이 정상이던 당시에 생긴 여학교들의 설립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로 [[그리스도교]] 계열 여성 [[선교사]]나 [[수도회]]가 세운 여학교. 또는 여성 운동가가 세운 여학교. 전자의 경우 [[미국인]] 여성 [[메리 스크랜튼]]이 설립한 [[이화학당]](한국 최초의 여학교), 미국인 여성 조세핀 캠벨이 설립한 [[캐롤라이나 학당]], 미국인 여성 애니 앨러스가 설립한 [[정신여학교]], 미국인 선교사 새뮤얼 오스틴 모펫이 설립한 [[숭의여학교]], 미국인 여성 캐롤이 설립한 [[호수돈여학교]] 등이 있다. 설립한 여성의 대부분은 선교사였다. 후자의 경우 [[차미리사]]가 설립한 [[근화여학교]], [[배상명]]이 설립한 [[상명여학교]], 이숙종이 설립한 [[성신여학교]] 등이 있다. 또한 [[대한제국]] 황실에서 세운 여학교도 두 곳 있었다.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와 그녀의 친정은 교육사업에 관심을 가져,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했다. (엄씨 집안은 두 여학교 외에 남학교인 [[양정학교]]도 세웠다.) 일제의 침탈이 가속되고 탄압이 교육계에도 미치자, 여학교들 중 많은 곳이 설립자 또는 교장이 변절하거나 일제에 적극 협력하면서 민족 교육과 계몽이란 목적을 잃기도 했으며 선교라는 미명하에 일제에 굴복하기도 했다. 그 중 친일 부역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제7대 교장이자 최초의 [[한국인]] 교장인 [[김활란]], [[박인덕]][* [[이화학당]] 출신의 교육자로, [[인덕공업고등학교]]와 [[인덕대학교]]의 설립자.], [[이숙종]], [[배상명]],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자 [[고황경]] 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친일 악질 민족반역자들이 해방 후 여성 민족 교육자로 얼굴을 바꾸고 죽을 때까지 여성계의 큰 손으로 활동했고, 아직 해당 학교 중에는 설립자의 친일 행위를 감추고 미화하는 곳도 많다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대]]에서는 학생들이 교내 [[김활란]] 동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으나, 학교 측에서는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045417?sid=102|아직 철거하지 않고 있다]]. [[서울여자대학교|서울여대]]는 고황경의 호인 '바롬'을 각종 교내 프로그램들의 명칭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롬인성교육, 바롬예비대학, 바롬국제프로그램, 홍보바롬이 등이 있다.] [[덕성여자대학교|덕성여대]]는 심심하면 크고 작은 교내 분규가 잇따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통적으로 파이터 기질이 강해 총장실 점거 농성은 별 새로운 이슈가 못 될 지경이다. 비리 재단 복귀 반대를 막기 위한 시위에서 학생회장이 여러 다른 학교의 [[학생회장]]들과 삭발식을 벌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교과부나 대교협에서 회의를 할 때 대학 관계자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동덕여자대학교|동덕여대]]와 [[덕성여자대학교|덕성여대]]는 같이 부르거나 같이 안 부른다. [[남자중학교|남중]] - [[남자고등학교|남고]] - [[공과대학|공대]] - 군대에 버금가는 [[여자중학교|여중]] - [[여자고등학교|여고]] - 여대라는 수녀 라인 출신의 학우들도 제법 보인다. [[라인|같은 재단의 여학교(중고등학교)]]에 다니다 올라오는 경우 혹은 점수를 맞추다 보니 3게이트에 맞추는 경우도 보인다. 다만 대학생쯤 되면 본인도 성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여고에 있을 때보다는 자기 처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교내에서 남자친구를 교제할 수 없는 여대 특성상, [[소개팅]]은 대체로 주변의 [[남녀 공학]] 대학들, 혹은 외부 동호회 [[아르바이트]] 하는 곳 아니면 [[교회오빠]]들과 이루어진다. 여대는 [[미팅]]이나 소개팅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므로 자기 능력과 노력에 따라 충분히 애인을 만들 수 있다. 종종 [[기숙사]]로 남친을 끌어들이다 적발되는 사건도 일어나곤 하는데,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성에 대해 보수적인지라 이런 류의 사고를 친 학생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외, 특히 서양의 대학에서는 오래 전에 애인을 [[기숙사]]에 불러들이는 것을 허용할지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학교 차원에서 논의가 오갔으며, 최근에는 [[기숙사]]의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대부분 허용하는 분위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국에서도 교내 분위기에 따라 별 말 없는 학교도 차츰 늘고 있다. 참고로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여중, 여고, 여대 같은 명칭이 성차별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교육계에도 존재한다. 남중, 남고의 이름에는 '남자'고등학교라는 명칭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인천광역시]] 및 [[충청북도]] [[청주시]]가 여학교의 교명에서 '여자' 를 삭제해버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성단체의 경우 여중, 여고보다는 여대를 많이 신경 쓰는 편. 예를 들자면 성평등을 위해서 [[이화여자대학교]]는 이화대학교로, [[숙명여자대학교]]는 숙명대학교 식으로 교명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학 측에서는 무시하고, 정작 여중, 여고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 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2010년도에 [[성신여자대학교]]가 '성신대학교'로의 교명 변경을 추친한 바 있으나,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우려한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여 무산되었다. [[https://naver.me/5VlaaUS7|#]]] 2016년도에 모 광역시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남녀평등을 위해 '여자'를 삭제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학생 투표를 진행했는데, 1~3학년 재학생의 95%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학부모들도 거의 100% 반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