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염정아 (문단 편집) === 성장기 (2003년~2006년) === [[1991년]] [[미스코리아]] 선(善) 출신이다.[* 이 해의 [[미스코리아]] 진(眞)은 이영현이다. 염정아가 회상하기로는 "엄청 예뻤던 언니"였다고 한다.] 이 후 바로 데뷔하여 [[우리들의 천국]]에 잠시 나오다가, 유학가는 역으로 하차. 하차 이유는 [[미스 인터내셔널]]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미스 인터내셔널에서는 3위를 차지하였다.[* 이 기록은 2000년 [[손태영]]이 2위에 입상하기 전까지는 최고 기록이었다.] 일반적으로 미스코리아 경력을 하다가 연기자로 뒤늦게 전향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본인 말로는 이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학교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다. 재미있어서 했다. 남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별로 관심은 없었고. 관심을 받고 나니까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중략) 학교에 [[연극]]반이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봤다. 음악실이었나. 칠판에 대사 3개를 써놨다.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연기하는 형식이었으며 뇌종양에 걸린 어린 소녀의 독백을 골랐는데 대사하면서 감정이 올라오는 거다. 막 쇼를 했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연기자가 돼야겠다 생각했으며 그전까지는 시인이 되겠다 그랬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7909|#]] 데뷔 이후 도회적인 이미지의 [[미스코리아]] 출신으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고, 배우로 커리어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평범한 여배우 중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 같았다. 염정아는 데뷔 초 자신이 갖는 한계점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경험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려 했다는 고백을 한 바 있다. >"데뷔 초에는 오히려 내 차가운 외모가 주는 한계가 있었다.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스크가 각광받을 때였고, 나는 아니었거든. 드라마에서도 부잣집 딸 역같은 전형적인 역할만 들어오더라. 다른 배우들을 보면서 부러워한다거나, 그걸 좀 벗어나봐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불만만 많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지점은 내가 다작을 했다는 거다. 가능한 한 경험을 많이 쌓았다." 평범한 배우로 쭉 이어질 듯 했으나[* 하지만, 배우 자신은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형제의 강》 출연을 결정할 때,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기존에 맡았던 배역들과 전혀 다른 성격의 배역을 맡으면서 점점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김지운]]의 《[[장화, 홍련]]》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히스테릭하고 기괴한 젊은 계모 역으로 출연하면서 섬뜩한 명연기를 보여주면서 영화계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당시 김지운이 염정아를 캐스팅할 때의 대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기도 했다. >"그전에도 염정아를 보면서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성도 있는데 단지 터닝포인트를 못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 《장화, 홍련》을 기획하면서 우연히 정아씨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게 됐는데 주위의 아주 미세한 소리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봤다. 소리뿐 아니라 냄새, 맛 이런 것에도 아주 민감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 《장화, 홍련》 시나리오를 막 쓴 상태였고, 계모 은주를 저런 캐릭터로 만들면 재밌겠단 생각을 했다. 파리한 외모의, 불안정하고 히스테리컬한 캐릭터가 그로 인해 완성됐다" >---- > [[김지운]] [[https://www.youtube.com/watch?v=lG0sviewS04|지금봐도 섬뜩한 염정아와 문근영 연기]] [[장화, 홍련]]이 사실 염정아에게도 그 연기의 전환 포인트를 준 건 사실인 듯하다. 그 전에도 염정아가 연기를 어느 정도 한다는 평가는 받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계기로 염정아가 배우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하는 평가가 많았다. <장화, 홍련> 자체가 흥행에도 성공하고, 한국 [[공포영화]]의 대표작 중에 하나 자리잡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도 <장화, 홍련>을 계기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녀의 인터뷰 중 일부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960|#]] >"결국은 캐릭터에 몰입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부터 배역에 내 사생활이나 개인적 감정을 끌어들이지 않게 되더라. 정말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오랜 연기생활의 끝에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장화, 홍련> 때부터 그걸 느꼈는데, 그 방법을 알고 연기를 하니까 연기가 너무 재밌더라. 그전에는 염정아라는 사람과 영화 속 인물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런데 <장화, 홍련>의 은주를 연기하면서 ‘아,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감이 오더라. 내가 만들었다기보다 운좋게 하게 됐고 감독님이 이끌어준 거였다." > 그리고, 2004년 [[최동훈]]의 감독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농염한 팜므파탈 연기를 선보이면서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배우 인생 전성기를 맞이한다. 배우로서 완성이 된 시기는 사실 이 시기라고 보면 된다. >"자신감이 생기는 거다. <장화, 홍련>이 주목받고, 연기가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가 제일 활동을 많이 했을 때다. <범죄의 재구성>의 서인경을 하면서는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보기와 달리 소심한 성격인데 그때 한창 자신감이 붙더라. 연기가 너무 재밌어, 그럴 때였으니까. 그러면서 결혼하기 전까지가 책도 많이 들어왔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었다. 지금하고는 다르게.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던 시기였다. 내가 즐길 수 있는 때였지. (웃음)" 염정아는 후에 자신이 맡은 캐릭터 '구로동 샤론스톤'에 대해서 "앞으로도 한국 영화에서 이 만큼 멋진 캐릭터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는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과 전혀 다른 개그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