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염파 (문단 편집) == 기타 == 염파의 망명은 그의 뒤를 이은 조나라의 마지막 명장 [[이목(전국시대)|이목]]이 참소를 받아 유명을 달리한 사건과 더불어 결국 조나라가 헤어나올 수 없는 [[막장]]으로 굴러떨어진 직접적인 계기라 할 수 있다. 사족을 달자면, 이목을 참소한 이도 당연히 곽개였다. --곽개객기-- 이 정도면 《[[삼국지]]》의 [[황호]]나 [[잠혼]]도 명함을 내밀기 어렵고, [[조고]]나 [[진회]] 정도는 되어야 견줄 만하다. 적어도 황호 때문에 강유가 죽임을 당하거나 하진 않았고, 잠혼은 [[손호]]에게 [[장상#s-4|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앞장서서 구명하기라도 했다.[* 그런데 손호는 이 사람을 오랫동안 노역시키더니 기어코 죽였다.] 진회도 이후의 행적이 문제지 금나라 황제 앞에서 "천하의 천자는 조씨 뿐" 이라는 간 큰 말을 하기도 했고 어쨌든 금나라와의 화평으로 더 이상의 전쟁은 막았다. 그 이후의 공포정치 때문에 간신으로 욕먹을 뿐 곽개처럼 철저히 나라를 말아먹지는 않았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황충]]의 연로함을 우려하자, 염파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밥]]을 한 말씩 먹고 [[고기]]도 열 근씩 먹어서 모두가 두려워했다며 큰소리치는 대목도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덕분에 중국에서 나이 든 사람이 [[노익장]]을 과시하면 황충, 혹은 염파라고 부른다. 조사, 조괄 부자와는 여러 의미로 안좋게 엮이는 편이다. 진나라가 공격할 때 염파는 이기기 어렵다고 비관론을 펼쳐 왕의 불만을 샀으나 조사가 용기를 내어 맞서 싸워야한다고 주장했고, 결과는 조사가 진짜로 이겨버렸다. 이후 또다시 진나라의 침공에 맞선 장평대전에서 염파가 수비전략으로 일관하다가 또다시 왕의 불만을 사서 조사의 아들 조괄이 염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맞서 싸운 조괄이 패배하면서 상반되는 결과를 불러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