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송논쟁 (문단 편집) ===== 남인 ===== 대동법, 호포제 등의 세역 개혁안에 대해서는 윤휴와 허목 등의 인물 사이에 의견차가 있었다. 윤휴는 대동법에 소극적인 대신 호포제를 추진하였고, 허목은 대동법에는 호의적이었으나 호포제에는 비판적이었다. 노비제를 비롯한 사회 질서를 강화하고자 하였으며, 오가작통제와 호패법 등을 강화하여 호구 파악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한편 재야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남인 세력에서는 균전제, 한전제 등으로 토지의 집중을 방지하려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남인이 추구했던 사회는 '''국가적인 힘을 통해 위계 질서를 바로잡고, 이를 통해 각각에게 맞는 역할을 배당하는 사회'''였다. 이 때문에 왕권의 확립을 주장하였고 신분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폐쇄적이었다.[* '비교적' 폐쇄적이었다는 것이지, 1660년대부터는 노비 가격이 대폭 폭락하는 등(즉, 노비 소유의 실효성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노비제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남인 계통의 인물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등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이를 위해 남인이 내세운 것이 절대성인 이(理)에 대한 관념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 질서를 회복코자 한 '''이기이원론'''이었다. 남인 계통의 [[유형원]]이 균전제를 주장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균전제란 국가에 의해 역(役)을 배당받고, 이에 걸맞는 토지를 수여받는 것인데,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토지 소유 구조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이는 [[맹자]]의 정전제 담론을 수용한 남인 고학파(古學派)의 성향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