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수 (문단 편집) == 예수의 사상과 그리스도교 == 근대에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면서, 오늘날에는 예수의 사상을 역사 비평적 방법론으로 해석하려는 많은 시도가 나오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예수의 사상은 그리스도교와 일치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문서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예시는 다루어볼 수 있을 것이다. 1. '''예수는 스스로를 메시아로 인식하였을까?''' 상당히 논쟁적인 주제인데, 브레데{{{-2 William Wrede}}}는 여기에서 '메시아 비밀'이라는 가설로 설명한다. 예수는 원래 스스로를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규정하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가 죽은 뒤 그리스도로 규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원래 당시 유대교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세속적 왕이지, 종교적 지도자나 인류의 구세주 같은 의미는 없었다. 예수 사후 제자들이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로 갱신한 것. 특히 [[마르코의 복음서]]와 [[루가의 복음서]]는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자 예수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숨겼다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태오의 복음서]]의 문장들은 공관 복음서와 내용을 교차 대조하면 그 수정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 성서학에서 다수론이라 하기 어렵다. 오늘날엔 '메시아 비밀' 개넘을 복음서의 문필적 내러티브로 분석한다. 2022년에 원서가 나온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2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Century''}}}[* 영어권 가톨릭 성서학계의 학술 주해서로, 미국 가톨릭 성서학의 황금 세대인 레이먼드 브라운, 조셉 피츠마이어, 롤랜드 머피로부터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2022년판은 한국어판으로도 번역 중이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서학계는 오랫동안 침묵하라는 명령을 역사적 또는 심리학적 모티브로 설명해 왔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이를 바로잡아 이 부분을 일종의 문학적 모티브나 주제, 혹은 도구로 여긴다. 마르코는 이미 1,1과 세례 때(1,11), 그리고 광야의 유혹 사화에서(1,12-13)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많은 이가 주장한 것처럼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주제를 통해 예수의 신원이 계시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논지는 아닌 듯 보인다. 마르코가 사용하는 이러한 내러티브적 수사{{{-2 修辭}}}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라고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정의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19: 마르코 복음서》, 염철호 번역, 성서와함께, 2023, pp.70-71 고전적인 성서학자이지만, 일찍이 루돌프 슈낙켄부르크{{{-2 Rudolf Schnackenburg}}}도 복음서의 문필적 분석에서 비슷하게 말하였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는 메시아 고백뿐만이 아니라 치유 사화에서도 '비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는 "예수의 금지 명령이 어떻게 무시되는지 묘사"한다.[*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같은 책 132쪽.]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마르 7,36) 그렇다면 최소한 치유 사회에 있어서는 마르코 복음서에서의 '메시아 비밀' 이야기는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메시아 비밀의 초점은 함구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함구령으로 드러나는 은밀한 발현에 있다"는[*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132-133쪽.] 것이다. 슈낙켄부르크의 이 예시는 메시아 칭호에 관한 직접적인 비밀 요청이 아니라 치유 사화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복음서의 '메시아 비밀' 이야기를 접근할 때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가령 마르 14,61에서는 대사제가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라고 묻는데, 마르코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간다면 1. 예수가 메시아라는 세간의 평을 적대자가 들었거나 2. 예수의 행적으로부터 "자칭 메시아"라는 의혹을 적대자가 도출했거나 이지, 소위 [[상상도 못한 정체]]라는 게 아니다. 또한 치유 사화가 아니라 베드로의 직접적인 메시아 고백에 대해서는 슈낙켄부르크는 다음을 지적한다.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은 마르코의 예수를 표현하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이 메시아 칭호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이 메시아를 현세의 정치적 통치자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해방자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코는 이 개념을 분명하게 밝혀 두어야 했다. …… 베드로는 여기서 예수를 군중의 생각과는 달리 구원을 베푸시는 분으로 고백했다. 이렇게 그의 고백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하나의 정점을 이룬다(이 고백으로 마르코 복음서 전반부가 끝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예수께서는 그 고백을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므로 그것을 백성들에게 퍼뜨리는 것을 '''금하셨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 후반부부터) 제자들에게 당신이 참된 메시아임을 드러내 보여 주기 시작하신다. 즉,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수난하고 죽어야 하는 '사람의 아들'의 비밀을 알려 주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이 함구령 배후에는 예수의 비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밝혀 줄 사람의 아들에 관한 사고가 배태되어 있다. >----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https://bundobook.co.kr/goods/view?no=1807&setMode=pc|《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134쪽. >예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비록) 은폐된 방식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메시아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분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분명하기 이 주장을 내세웠다. 다만 메시아로서의 그분의 사명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이라는 것도 밝혀 주었다. >----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Règne et Royaume de Dieu''》(R. Marlè 번역), Paris 1965, p.100[* 샤를르 페로, [[https://bundobook.co.kr/goods/view?no=12476|《예수와 역사》]], 박상래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개정 1판), 297쪽에 인용된 것을 발췌함.] 안젤로 아마토{{{-2 Angelo Amato}}}의 경우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으나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예수는 단 한 번도 "메시아"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고, 이 호칭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불릴 뿐이다. 단 한 번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그 호칭을 수용한 적은 있다.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5-26) >그밖에 다른 두 곳에서 예수는 이 호칭을 인정하지만,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한 베드로의 고백{{{-2 (마르 8,27-33 병행)}}}은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책 속 주석)참조: I. De La Potterie, "La confessione messianica di Pietro in Mc 8,27-[math({33}^{n})], in ''II Messianismo', Atti della XVIII settimana biblica dell'ABI, Paidia, Brescia 1966, pp. 59-77; R. Pesch, "Das Messiabekenntnis des Petrus(Mk 8,27-30). Neuverhandlung einer alten Frange", in ''Biblische Zeitschrif'' 17(1973), pp. 178-195; 18(1974), pp. 20-31] 예수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2 (마르 8,29)}}} 예수는 이 호칭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해방가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예수에게 메시아는 고통을 당해야만 하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2 (마르 8,31)}}}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백성들이 기다리던 그런 의미로의 메시아가 아니라 {{{-2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예수의 수난예고 직후 고난받는 메시아를 반박함: 마르 8,32)}}}, 하느님의 뜻에 따른 메시아였다. >두 번째는 대사제가 예수에게 신원을 물을 때다. "'당신은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하고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2 (마르 14,61.62)}}} 이 일화는 역사적으로 볼 때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데, 그 이유는 소송과정 중에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선언할 적절한 시간에 잘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학이 가미된 것도 아니요, 마르코 복음사가의 편집도 아니라는 것이다. "찬양받으셔야 할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의 표현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묘사하는 표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사제의 질문형식은 목격증언을 동반한, 대사제가 직접 발설한 말{{{-2 (ipsissima vox)}}}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책 속 주석)참조: K. Schubert, ''Jésus à la lumière du Judaisme du premier siècle'', Cerf, Paris 1974, p. 157] 여기서 예수가 왜 정치적 함축성이 들어있는 "메시아"라는 호칭을 받아들였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이렇게 알아들을 수도 있다. 예수는 당시 무력한 상황에서 소송에 계류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가 인정한 메시아의 의미는 정치적 승리자인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는 종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 >-안젤로 아마토(Angelo Amato). [[https://www.bundobook.co.kr/goods/view?no=13772|《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math({ }^{2})]2014), 318-319쪽 비슷하게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는 예수가 친히 메시아라고 말한 바는 없지만, 예수의 사명의식이 메시아라는 주제를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 즉 직접적인 발설은 없었으나, 예수는 메시아 사명의식을 지녔다는 것이다.[* 참고: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433쪽]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해, 근래 성서학계에선 '메시아 비밀'을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역시적이고 심리학적인 보도로 보지 않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이를 바로잡아 이 부분을 일종의 문학적 모티브나 주제, 혹은 도구로 여긴다."{{{-2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19: 마르코 복음서》, 염철호 번역, 성서와함께, 2023, pp.70-71)}}}[* Stephen P. Ahearne-Kroll, ''Mark'' in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Century》, Bloombury Publishing Plc, 2022] 2. '''[[그리스도교]] 교의는 사실은 바오로가 주된 발명자인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교는 사실 바오로의 사상이지 예수의 사상이 아닌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바오로]]가 예수를 '신격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생각이다. '신격화'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실상은 정반대이다. 후대의 세계 공의회들이 희랍 철학적인 용어를 동원해 가며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과 유일신론을 조화롭게 말하려고 애썼듯이, AD 1세기 그리스도교에서도 유일신론은 민감한 문제였고,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이 다신론으로 오해받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바오로는 예수를 신격화하는 동기를 발명해 내려는 축이 아니라 유일신론을 자극하는 일탈을 피해가려는 쪽이었다. >변모 이야기(마르 9,1-9)가 보여 주듯 시나이 동기는 유다 그리스도인들의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고 여기에 수집된 일련의 표상들이 바오로 서간(1테살 4,13~17; 2코린 3장; 로마 10,6~7)에도 나타난다. 물론 이 소재들은 유다계 그리스도교적 표상의 언어로 표출된다. 그것은 단순한 상상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과 함께 현실 너머의 것을 번역하기 위해 히브리적인 방식의 상징과 이미지들로 반죽된 언어인 것이다. 바오로는 이 단편적인 소재들을 수용하여 재편성하고 어느정도 순화시킴으로써 유일신 신앙을 자극할 수 있는 일탈을 피해갔다. 사도는 흔히 말하듯 예수를 신격화하는 동기를 발명해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우상화의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희랍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하여 초대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교리 교수 내용을 유다·희랍계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 >-샤를르 페로(Charles Perrot), [[https://bundobook.co.kr/goods/view?no=6090|《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백운철 신부 옮김(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352쪽 오히려 복음서는 '이스라엘의 신랑'으로 묘사되는 하느님의 위치를 예수에게 적용하여, 유다인에게 매우 도발적인 말을 한다. >마태 9,14~15과 그 병행구 그리고 마태 22,11~14; 25,6; 요한 3,29에서 신랑은 예수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하느님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이사 54,5~6에 등장한다.[* (책 속 주석)참조: 호세 1~3장; 이사 62,5; 에제 26장 그리고 시편 45에 관한 타르굼의 독서는 이 시편을 하느님과 그의 신부인 시나고구에 적용시키고 있다.] >---- >-샤를르 페로,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백운철 신부 옮김(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334-3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병행구: 마르 2,19-20; 루카 5,34-35] >----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마태 22,2)[* 병행구: 루카 14,15-24] >---- >그때에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 25,1) >----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요한 3,27-29) 또한 연대기적으로 복음서보다 더 오래된[* AD 55/56 추정.] 필리피서의 찬가(2,6 이하)의 경우, "바오로 이전의 전승으로 보이는 여러 요소를 가진 이 찬가는 아마도 분명히 전례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샤를르 페로,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백운철 신부 옮김(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329쪽.] 물론 그리스도교의 교의라는 게 한 둘이야 아니지만, 바오로의 위치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3. '''예수는 교회를 원했나?''' >Q: 예수께서는 교회를 원하셨습니까? > >A: 많이들 다룬 문제로군요.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나타난 것은 교회다"라는 알프렛 롸시의 유명한 말도 있지만, 그리 간단히 처리해 버려서는 물론 안 되겠지요. 이미 말한 대로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받았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바깥을 생각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개인만을 상대하신 것도 아닙니다. 백성 속의 개인을 상대할 때도 이 선민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상대하신 것이지요. 말하자면 예수 시대의 교회란 이스라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활약 당시에도 또 나중에 사도들의 활동 중에도 이스라엘이 배반한다는 것,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상황이 주어지자, 사도들은 이제 유다인 아닌 사람들,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과 그다음 부활후대 상황에서 교회를 세운 사람들, 공동체들을 세운 사람들이 사실 같은 사람들이었고 보면, 특별히 이 점에서도 예수 시대와 교회 시대 사이의 연속성은 주어져 있다고 봅니다. >---- >-요아힘 그닐카, 방송 대담[* 1992년 5월 28일, 독일 Bayern 방송국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톤 켄테미히가 뮌헨 신약학자 요아힘 그닐카에게 묻는다」(Jesus, der Christus. Anton Kentemich befragt den Müncher Neutestamentler Joachim Gnilka)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던 대담. 번역은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437쪽] >---- >예수가 관계하는 것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이다. 예수는 자기네 역사를 지닌 이 백성 앞에 나타난다. 이 백성을 상대로 활동한다. 이 사정이 예수의 활동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예수 자신이 이 백성의 일원인 이스라엘 사람이요, 모국어를 말하며, 성서의 언어에서 취한 청중에게 익숙한 표상과 동기 들을 자기 선포에 사용한다. 개인을 향해 결단을 호소할 때도 그를 이 백성의 일원으로 바라본다. 예수의 구원 제시를 개인 치유로 이해한다면 몹시 오해가 될 것이다. 예수는 이 백성을 앞에 두고 이 백성에게 자기가 보냄받았다고 의식했으며 이 백성을 자기 제자들의 협력으로 임박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시키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런 집단적 현상을 처음으로 만들어낼 까닭이란 없었다. 아니,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 소임을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사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예수 활동의 이 정향을 삭감 없이 인정할 때라야 예수의 활동을 이해하게 된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 갈릴래아의 예수 청중 가운데 이방인도 있었다는 사실이 종종 적시되어 있다 해서 이 정향이 원칙적으로 달라지는 바는 조금도 없다. 물론 예수의 청중 속에 그런 이방인들이 있음을 우리는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예수의 구원 의지는 이스라엘을 향해 있다. 이스라엘이 ― 꼬집어 표현하자면 ― 예수의 "엑클레시아"{{{-2 ἐκκλησία(교회)}}}였으며, 새로이 최종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불려 들어와야 할 백성이었다. 여기서 "엑클레시아"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다름없이 하느님 백성의 모임을 뜻한다.[* (책 속 주석) 그리스어 성서 번역에서 이스라엘이 자주 "엑클레시아", "주님의 엑클레시아" 등으로 일컬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명 23,1.2; 판관 20,2; 3열왕 8,14.22.55; 1역대 13,2 등. 히브리어 해당어는 대개 "카할"이다.] >예수의 활동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복음서들에서 공간적으로 이스라엘 땅과 계속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로 알려진다. 요르단 동쪽의 헬레니즘화한 열 도시 지역인 데카폴리스가 언급되기는 하지만{{{-2 (마르 4,20; 7,31; 마태 4,25)}}},[* (책 속 주석) 스키토폴리스만이 요르단 서쪽에 있었는데, 역시 열 도시에 꼽혔다.] 그리고 마르코 7,24 이하 // 마태오 14.21 이하에 따르면 예수는 띠로와 시돈 지역으로 넘어가고(루가는 삭제한다) 마르코 8,27 // 마태오 16,13에 따르면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부근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2 (루가 9,18은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일이 없이 예수의 혼자 계심을 말한다)}}}, 아무튼 이방인 가운데서 일어난 전도 활동을 말하는 바는 없다. 띠로와 시돈 지역으로 들어가는 여행의 상황이 어떠했다고 할 수 있든간에, 그 지리적 소여는 정작 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그 여행은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간청을 들어준{{{-2 (마르 7,26//)}}}, 더욱이 예외로 특징지어진{{{-2 (마르 7,27-30//)}}} 여행에서 추론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회상으로서 북부 여행에서 선교사업이 성립될 수는 없었다면, 여기서는 분봉영주 헤로데 안티파스 쪽의 일시적 추적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겠다{{{-2 (참조: 루가 13,31-32)}}} >----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https://bundobook.co.kr/goods/view?no=1701|《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256-257쪽 >---- >우리는 예언자들이 고지한 만민순례{{{-2 Völkerwallfahrt}}}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아야겠다. 여기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텍스트는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섬기고 조공을 바치러 시온으로 모여온다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들이 아스라엘의 구원에 편입하여 행동한다는 그런 텍스트들을 보자. 예컨대: "그 날에, 많은 이방 민족이 주님께 와서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주께서 너희와 함께 사실 것이다"(즈카 2,15). 혹은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민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당신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그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2 (이사 2,2-3)}}}. 이렇게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구원 또는 율법 안에 들어오리라고 알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신도 자기 하느님께 몸바쳐 섬기리라는 혹은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런 상태로 되돌려 놓이리라는 전제가 없다면 상상할 수 없다. 예수 말씀을 위해서는 만민순례의 전환해석과 맞먹는 또 다른 출발점이 생겨났다. 그리고 바로 이 도발적 재해석에서야말로 우리는 ― 띠로와 시돈에 관한 판단의 경우와 비슷하게 ― 예수 말씀의 증빙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연결지어 볼 수 있는 경우는 여러 가지로 생겨난다. 어떤 경우든, 민족들이 마지막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러 올 것이다. 예수는 옛 예언자 사상을 적극적 형태로 다시 취한다. 그것이 중간시대에는 특히 묵시문학을 통해 퇴화하여, 마지막에 하느님 나라가 나타날 때 "이방인의 떼지은 무리"가 말살되리라고,[* (책 속 주석) 에즈라 묵시록 13,49.] 적어도 일부라도 역사상 각 민족의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에 따라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되고 있었다.[* (책 속 주석) 참조: 시리아어 바룩 묵시록 72,3-6. 그러나 3,716 이하는 이방인 세계에 대해 열려 있다.] 이스라엘이 또는 이 겨례의 다수가 예수의 메시지를 배척하더라도 민족들은 올 것이다. 만민순례 사상의 재해석은 그러므로 현재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드러난 이스엘의 상태와 대비해서도 민족들의 도래가 기대된다는 데에 있다. >---- >-같은 책, 263-265쪽 >예수는 유다인이었으며, 유다교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늘 관건이었다. 따라서 종교적 개인주의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사와 종교사 그리고 종교의 구조를 보더라도 그러했다. >---- >-클라우스 베르거{{{-2 (Klaus Berger)}}}, 《예수》{{{-2 (Jesus)}}} 2권, 전헌호 옮김, 성바오로, 2013, 246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