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수 (문단 편집) ==== 회화의 묘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acred heart of jesus.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_Head_of_Christ_by_Warner_Sallman_1941.jpg|width=100%]]}}}|| || 예수 성심(聖心) || 그리스도의 두상, 워너 샐먼 작(1941) || 미술에서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모습이자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수의 외모.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관적으로 묘사된다. 서구적인 외모에 어깨까지 닿는 정도의 길이의 갈색 곱슬머리에, 앞머리를 옆과 뒤로 넘겨 늘어뜨렸다. 그리고 약간의 수염을 기른, 긴 얼굴형의 젊은 남성이다.[* 이 이미지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인 선수]]에 한해 장발의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외모의 선수에게 여지없이 "○○예수"라는 별명을 붙이곤 한다. 예수라는 호칭 앞의 '○○'는 팀의 연고지 내지는 홈구장 명칭이 붙는다. 대표적 사례가 '마산예수'라는 별명을 얻었던 [[재크 스튜어트]]와 '잠실예수'라는 별명을 받은 [[더스틴 니퍼트]]와 [[케이시 켈리]].] 체격은 마른 편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efalù_Pantocrator_retouched.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xristospantokrator-agia-sofia.jpg|width=100%]]}}}|| || 체팔루 대성당, [[이탈리아]] [[시칠리아]], 12세기 || [[하기아 소피아 성당]], [[튀르키예]] [[이스탄불]], 13세기 || 이 예수의 묘사는 [[이콘]] 양식의 하나인 '크리스토스 판토그라토(전능하신 그리스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판토그라토는 전능하다는 의미로, 예수가 의자에 앉아 왼손엔 성경을 들고 정면을 보며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의미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이콘 양식이다. 원래 초기 [[기독교]]에서는 짧은 머리 예수가 나오는 등 예수의 묘사는 통일되지 않았다. 현재 가장 오래된 기독교 미술은 주로 [[이탈리아]] [[로마]] 근교의 [[카타콤]]에서 발굴할 수 있다. 원래 그리스도교가 퍼진 중심지를 생각하면 [[그리스]],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도 많이 발굴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성상 파괴 운동]]과 [[이슬람]]의 지배를 거치며 해당 지역들의 초기 [[기독교]] 미술은 거의 대부분 소실되었다. 또 1세기까지만 해도 유대교적 관념이 많이 남아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일종의 [[우상숭배]]처럼 여겨져서 예수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익투스|물고기]], 혹은 [[성체성사|빵과 포도주 잔]], [[십자가]] 같은 상징적인 묘사가 많았다. 그러다가 대략 2~3세기경부터 긴 머리 예수를 묘사한 그림이 나오기 시작한다. 왜 예수의 머리카락을 길게 묘사하게 된 건지는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 첫째로는 당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 [[철학자]]에 비견하는 시도를 자주 했는데, 그리스 철학자 중 머리를 길렀던 [[아르키메데스]]나 [[아폴로니우스]]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됐다는 설. 둘째로는 당시 조각상에서 높은 신, 특히 [[제우스]]나 [[포세이돈]]은 긴 머리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 셋째로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 탄생 때에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천사가 말하는데, 이는 70인역 성경에서 나지르 사람을 오역한 문장으로 하느님에게 봉헌되어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삼손]]이 바로 그 나지르 사람이다. 즉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가 머리를 길렀다고 추정해서 그렇게 묘사했다는 설. 넷째로는 헤어스타일을 다르게 그리면 다른 사람들이랑 구분하기 쉬워서 그렇게 그렸다는 설이 있다. 다섯째로는 예수가 원래 머리카락이 좀 긴 편이었다는 극히 심플한 주장. 다만 이 시대의 긴 머리 예수는 여전히 '우리가 아는 모습'의 묘사가 아니었으며, 묘사들이 통일되지도 않았다. 긴 얼굴의 젊은 남성이 아니라, 기골이 큰 중년 남성에 곱슬거림이 풍성한 장발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묘사는 실제로 [[제우스]]나 [[포세이돈]] 회화의 영향일 수 있다.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avenna_Jesus.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inai jesus pantocrator.jpg|width=100%]]}}}|| || [[라벤나]]의 [[갈라 플라키디아]]의 영묘의 모자이크, 5세기(左) || 라벤나 대성당의 모자이크, 6세기(右) || 성 카테리나 [[수도원]], 이집트 [[시나이 반도]], 6세기 || 그러다가 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공인되고서 그리스도교 미술이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4~7세기까지 동안 예수의 묘사는 통일되지 않았고, 각 지역 교회의 문화가 반영되어 서로 다른 모습의 예수를 묘사했다. 깔끔하게 면도한 남성상을 좋아하는 [[헬레니즘]]-[[라틴]] 문화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동전에 남은 군주들의 초상과 공화정 로마인들의 흉상 등에 남은 가지각색의 당대인 모습을 보더라도, 남성들은 깔끔하게 면도하고 있다.] 이러한 남성상에 따라서 주로 수염 없이 예수를 그렸다. 반면 수염이 풍성한 남성상을 선호하는 근동 문화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예수의 모습'이라 인식하는 바로 그 모습에 가깝게 예수를 그렸다.[* 그리고 동방 교회들의 성직자들이 근동의 이해에 따라, {{{-2 (그리고 기존 헬레니즘 문화권의 남성상을 거슬러)}}}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면서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이콘이든 동방의 성직자이든 수염이 풍성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러한 근동 문화의 이해는, 역사적으로 AD 1세기 이스라엘의 남성상에 상대적으로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 등 동방 교회에서는 [[성상파괴운동]]을 거치면서 [[이콘]]이 양식을 정확하게 갖춰서 묘사되어야 한다는 교리가 정착되었고, 그에 따라 예수의 모습 역시 저 모습으로 완전히 정착한다. [[정교회]]의 성화는 정말로 '공식'이 있어서 딱딱 정확히 양식을 맞춰 그려야 한다. 구도나 자세, 표정, 심지어 옷의 색도 함부로 바꿔 그리지 못한다. 다만 말해둘 것은 가장 오래된 이콘이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살았던 당대의 것은 아니며 저기 묘사된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회화의 가장 오래된 원형인 시나이 카타리나 수도원의 이콘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활약했던 시기와는 300년에서 길게는 5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또한 종교적 목적으로 제작되는 이상 작성자의 주관 즉 제작 대상에 대한 경모의 감정이나 작성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형태의 신성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입멸 5백 년 뒤에야 처음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석가모니 부처도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도 그렇고, 종교 회화를 당사자의 실존 화상과 일치한다고 보면 안된다. 반면 서방 교회는 동방보다 이콘을 더 자유롭게 그렸으며, 정말 온갖 화풍의 예수 모습이 다 나타났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2/1398_-_Milano_-_S._Lorenzo_-_Cappella_S._Aquilino_-_Traditio_Legis_-_Dall%27Orto_-_18-May-2007.jpg/1920px-1398_-_Milano_-_S._Lorenzo_-_Cappella_S._Aquilino_-_Traditio_Legis_-_Dall%27Orto_-_18-May-2007.jpg|6세기 밀라노 모자이크]]에서는 헬레니즘적 남성상으로 예수를 묘사하고, [[https://en.wikipedia.org/wiki/Christ_in_Majesty#/media/File:Florentinischer_Meister_um_1300_001.jpg|1300년경의 피렌체 이콘]]에서는 근동 남성상에 따른 수염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심지어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f/Peintures_murales_Jaleyrac_2.jpg|15세기 프랑스 프레스코화]]에서는 마치 콥트인처럼 그렸다. 심지어 [[르네상스]] 시기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최후의 심판]]의 경우도 헬레니즘적인 예수상에 가까우며, 수염 가득한 예수 모습은 역사가 진행되면서 점진적으로 서방 문화에 보급된 것이다. 한편 이 예수의 묘사에 대한 역사적 맥락은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를 막론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가 아는 모습의 예수는 [[화이트워싱|중세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그린 것]]'이라는 말이 서양과 한국 교회를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을 정도. 인종 차별을 극복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미술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낭설.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림은 중동 교회에서 1500년 전에 그리기 시작한 거고 유럽인들은 그때는 수염 없는 예수를 그렸었다고 설명해 주자. [[프랑스]]의 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가 [[체사레 보르자]]의 얼굴이 예수의 초상화의 모델이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체사레 보르자의 출생 연도(1475)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 체사레 보르자는 본인의 진짜 얼굴 초상부터가 안 전해진다. 지금 있는 그림은 후대의 상상도다. 그가 살던 시대를 생각하면, 오히려 체사레 보르자가 예수의 얼굴을 모방해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동시대 인물인 [[독일]]의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실제로 대표작이기도 한 [[자화상]]에서 본인의 얼굴을 예수의 모습에 가깝게 묘사했다.]. [[파일:external/www.goodcounselhomes.org/high-resolution-divine-mercy-image.jpg|align=center&width=400]] 한편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에게 발현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성화가 있는데, 굉장한 [[훈남]]이기는 하다. 다만 이 성화도 원본은 1934년도에 그려진 것이 따로 있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위 성화는 성녀 파우스티나가 선종하고 5년 뒤인 아돌프 힐라라는 화가가 성녀 파우스티나의 [[고해성사|고해]][[사제]]였던 안드레아스 신부의 감독하에 그린 것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로 이 성화를 봉헌했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f5e2bd21875a1bbb3af8e74263e94166.jpg|width=100%]]}}}|| || [[토리노의 수의]]에 새겨진 화상을 복원한 모습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ersian_depiction_of_Jesus_-_Sermon_on_the_Mount.jpg|width=100%]]}}}|| || [[이슬람]] 측 페르시아 세밀화에서 묘사된, 설교하는 예수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