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스(밴드) (문단 편집) == 상세 == 밴드의 리더는 [[보컬리스트]]인 [[존 앤더슨]] (Jon Anderson)이며, 음악적 역량을 가장 많이 보여준 이는 [[릭 웨이크먼]]이다.[* 릭 웨이크먼의 평가는 연주자적 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것이다. 작곡이란 측면에선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이 우세했다...라고 적혀있었지만, 이런 평가는 릭 웨이크먼에게 대단히 실례이다. 본문에도 언급되다시피 웨이크먼은 런던 왕립음악대학(RCM)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음악적 성향이 다른 멤버들보다 좀 더 클래식, 특히 오케스트레이션 성향이 강했다. 결국 이 양반이 작곡한 음악들은 밴드 내 작품들이 아니라 별도의 개인 작업들이 훨씬 더 유명하다. 예를 들면 [[https://www.youtube.com/watch?v=YJ9W2pZwvlY|이런 거]]. [[https://www.youtube.com/watch?v=VExLG8E6tMA|아니면 최소한 이건 어디선가 들어 봤을 것이다]]. 전자는 그가 예스와 처음 결별하던 1974년에 발표한 곡으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1400만장이 팔렸다고 알려졌으며, 후자는 그 다음 앨범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 역시 적지 않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작품들의 성향으로 볼 때, 아마도 밴드보다는 록과 클래식의 결합을 통해, 20세기 판 [[리하르트 바그너|바그너]] 같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예스의 전성기 때 음악적인 방향에 가장 많이 기여한건 역시 [[존 앤더슨]]이고, 작곡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의 고집적인 산물이었던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1973)"에서의 한계도 염두에 두자.][* 또 릭 웨이크먼은 최근에 대영제국 훈장의 CBE 등급을 수여받았다.[[https://youtu.be/lZicS7wjdMk]]] [[존 앤더슨]]의 경우 중간에 다른 멤버들과의 분란으로 한번 축출된적이 있고, 릭 웨이크먼은 몇번의 재가입과 탈퇴를 반복한다. 현재의 밴드 명의의 법적인 소유자는 밴드를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다. 현재는 [[존 앤더슨]]이 탈퇴 (2002년)하고 다른 보컬리스트가 영입되었다. 음악적 성향이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밴드의 특징을 들자면, '''첫째는 리더 [[존 앤더슨]]의 천사와 같은 청아한 보컬'''이고, '''두번째는 상당한 연주 실력을 지닌 멤버들의 꽉 짜여진 연주 하모니,'''[*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는 리딩 베이스의 선구자였고, 드러머 빌 브루포드는 엇박, 정박을 완벽히 연주할 수 있었으며,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는 일렉 기타의 강렬한 사운드와 어쿠스틱 기타의 부드러운 음색을 모두 완벽히 표현할 수 있었다. Roundabout 앨범에서의 각자의 솔로곡 The fish, Five per Cent for Nothing, Mood for a day를 들어보면 그들의 실력을 잘 알수 있을것이다. 키보드 릭 웨이크먼은 위에 나왔으므로 생략.] '''셋째는 록 이외의 여러가지 음악 요소가 잔뜩 들어가 조화를 이룬 복잡하고 드라마틱한 곡의 전개'''이다. 쉽게 말해 전형적인 록밴드가 키보드 멜로디를 중심으로 각각의 연주력으로 [[오케스트라]]를 구현해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이러한 성향은 예스를 제외하고도 [[제네시스(밴드)|제네시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의 많은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 대부분이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연주력으로 따지고 보면, 70년대 당시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를 벗어나서, 록의 무대 전체를 살펴봐도 내로라할 만한 뮤지션들이 모인 밴드였기에[* 릭 웨이크먼은 음악계를 통틀어 최고의 키보디스트중 하나였고, 빌 브루포드는 러시의 [[닐 피어트]]가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프로그레시브 록 최고의 드러머였고, 스티브 하우는 70년대에 이미 [[스티브 해킷]]을 누르고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리치 블랙모어]]와 같은 빅네임들과 장르를 초월해 당대 기타리스트 순위에 오르내리고 80년대엔 아시아로 초대박을 친 프록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다. 베이스는 일정 수준 위로 올라가면 비교가 힘들지만 크리스 스콰이어는 독창적이고 그루브한 연주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존 앤더슨은 다른 프록 보컬들과 차별화되는 성가대를 연상시키는 청아한 고음역대와 가성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내며 당시 Jon 'God' Anderson이라는 소리까지 듣던 거물 보컬리스트다.] 그 연주력은 지금 들어도 굉장히 잘 짜여져있고 지금의 후배 연주자들도 감히 따라하기가 어려운 연주 파트가 많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기승전결의 순서를 가진 복잡한 구조의 곡을 만들었는데, 한 앨범에 세네개의 곡밖에 안들어가는 대곡위주의 수록곡들이 많다. 특히 전성기 시절 음악들은 이쪽 바닥의 대표적 모범사례이다. 그들의 음악은 기존의 록 음악 이외 여러가지 다른 장르의 자양분이 많이 스며들었는데, 먼저 [[클래식(음악)|클래식]]적 악곡 요소가 다분히 많이 차용되었고, 빌 브루포드와 같은 연주자들의 취향으로 전위적인 [[재즈]]적 시도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6,70년대 당시 록음악에 많은 영향을 준 [[동양]]의 [[명상]] 사상, 즉 [[힌두교]]의 신비주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리더]] 존 앤더슨의 시도로 예스의 음악에는 이후 [[뉴에이지]]라 불리울 형태의 새로운 음악 사조의 시조라 할만한 실험도 많이 나타난다. 예스의 음악이 장중하고 때론 암울하기까지 한 [[핑크 플로이드]]나 [[킹 크림슨]]과 차별을 두는 밝고 낙관적이고 환희에 찬 모습을 많이 보이는건 이때문이기도 하다. 예스의 음악은 장중할지언정 어둡지는 않다. 70년대 당시 [[존 앤더슨]]은 멤버들을 데리고 [[인도]]의 [[힌두교]] 요기들을 방문하곤 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릭 웨이크만을 제외한 멤버들 대부분이 채식주의자라고 하기도 하고, 밴드 멤버들 대부분이 존 앤더슨의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예스의 음악 = 뉴에이지'''라고 생각하는건 큰 오산이다. 영향만 주었을 뿐, 예스의 음악과 뉴에이지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보면 된다. 워낙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자부심 강한 멤버들이 모인 밴드였기에 밴드의 멤버들은 자주 교체되었으며, 그런만큼 음악의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 이런 점에선 음악 성향은 다르지만 예스 못지않게 멤버 교체가 잦았던 [[딥 퍼플]]과 비견되기도 한다. 사실 거론했던 5대 밴드 중 예스와 [[킹 크림슨]]은 멤버들끼리의 교류가 잦았고, 이후 밴드 멤버들끼리 이합집산하여 [[U.K.]], [[아시아(밴드)|아시아]] 등등의 여러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고 서로의 솔로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스와 [[킹 크림슨]],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이 세 밴드 멤버들의 활동 연혁을 살펴보면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세계의 절반 이상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밴드에서 활약한 연주자들이 곧 당시 프로그레시브 록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 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201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때 초기 멤버들이 모두 모여 Roundabout을 불렀는데, 사망한 [[크리스 스콰이어]]를 대신하여 [[러시(밴드)|러시]]의 게디 리가 참여하였다. 반응 역시 스콰이어를 대신할 사람은 리 밖에 없다는 분위기이다. [[Owner of a Lonely Heart]]의 경우는 스티브 하우가 베이스를 연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