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감도 (문단 편집) == 상세 == 현재 한국 난해시의 최고봉으로,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게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기는 한지, 아니, 애당초 해석을 염두에 두고 창작을 한 것인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난해한 작품이다. 위에서 말했듯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단될 정도였다. 이 시는 게재 첫 날부터 파문을 일으켰고, [[조선중앙일보]]는 "이런 시를 실을 거면 폐간해버리라"는 항의전화와 편지가 쏟아졌는데도 15편까지 꿋꿋하게 올렸다. 참고로 당시 이상에게 시를 쓸 것을 추천한 사람은 당시 학예부장이었던 [[이태준(소설가)|이태준]]이었고 최종적으로 게재를 승인한 사람은 남의 비난은 신경 안 쓰기로 유명했던 [[여운형]] 사장이었다. 이태준은 이상의 시가 실린 신문을 편집할 때 시를 싣지 않으면 그만두겠다며 항상 사표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도 예정된 30편을 다 싣지 못했다. 당시 과격한 독자 중에는 '''이런 미친 놈의 헛소리를 내지른 이상을 죽여야 한다'''는 항의를 보냈다(…). 당시에는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수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신문을 읽거나(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한글만이 아니라 한문도 섞여 있다) 글을 쓸 줄 알았고 [[전화기]]는 비싸서 부자들 정도나 가졌던 시절이었다. 즉 지금처럼 문맹률이 낮거나 이동통신과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항의가 빗발쳐 연재가 중단될 정도였다면 당시 반응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연작들에는 일본어 어조가 매우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여기에 실을 때엔 그나마 순화되어 옮겨졌지만, 본 텍스트에는 외래어, 문법, 전문용어 등이 대부분 일본어 어조로 쓰여있다. 이로써 한국 문학은 대단한 실험으로 진일보를 이루었다는 평을 듣게 되지만 그만큼 문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골치깨나 썩게 되었다. 난해시 중에서도 [[최종 보스]]. 사실 이런 게 15편 더 있었으면 국내 국문학자들은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2009년 상반기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이자 [[국어국문학과]] 교수 [[권영민#s-3|권영민]]이(현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이상 전집을 내면서 새롭게 해석한 바 있다. 다만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나 이상의 평소 작품 등을 볼 때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그려낸 시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제목에서부터 이를 잘 드러내는데, '[[조감도]](鳥瞰圖)에서 오자가 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까마귀]]라는 새의 이미지와 획 하나가 부족한 불완전한 단어를 통해 암울한 분위기와 불안감을 일부러 형상화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설이다. 애초에 이상도 건축가인데 틀릴 일이 없다. 오감도 시 제1호를 예로 들면 반복되는 13과 '무섭다고 그리오', 막혀있는 길 등이 바로 그런 소재들이다. 또 띄어쓰기가 거의[* 띄어쓰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안 되어 있는 점도 이를 드러낸다.[* 다만, 이상의 시는 대부분 띄어쓰기가 들어가 있지 않다. 한국어 표기에 띄어쓰기라는 게 서양에서 도입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착이 잘 안 됐던 시절임도 감안해야 한다. 가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자동기술법]]'+'띄어쓰기 무시'='''이상의 시'''라고 할 때가 있다.] 문학계에서는 [[조감도]]의 오자가 난 것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 구체적인 설명으로는, 당시 활자공이 오감도를 최초로 인쇄할 때, 鳥와 烏를 착각하여 오감도로 인쇄하였다. 활자공은 평소 이상의 이상한 인간상과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뒤늦게 후회하며 ~~크게 깨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이상이 찾아왔다. 활자공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떨었으나 이상은 활자공을 얼싸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이상은 자신의 시가 오감도라는 이 일탈로 완성되었다며 기뻐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전해지나, 어디까지 [[카더라]] 수준의 문학계 야사로 사실인지 확인된 바는 없다. 생전에 이 작품을 썼을 때는 비평과 악평만이 가득했지만, 현대로 넘어 오면서 이상의 시는 재평가받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오감도가 서 있었다. 갖가지 인용과 패러디를 통해 오감도(특히 시 제1호)는 널리 알려졌고, 국내 시 역사상 과거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투명드래곤]]과 비슷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봐도 될 것이다. 투드도 연재 당시에는 그저 병맛 3류소설 혹은 이상한 쓰레기 소설 정도의 평이었으나, 추후 다른 양판소들이 여러 문제점들을 드러내면서 양판소의 여러 문제점들을 비판한 소설이 아니냐는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오감도 이후 이상은 국내에서 [[역단]]과 [[위독]]을 연재했는데, 이 두 작품이 오감도와 흡사한 부분이 많아 오감도의 남은 15편 등이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오감도는 두 작품들을 포함한 총 36작으로 '''오감도 형식'''을 진정한 의미에서 맺음지었다고 볼 수 있다. 자세한 건 위 문서들로 이동할 것. '''본 문서상 [[권영민]]의 해석은 권영민 본인이 이상 연구를 목적으로 집필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882974|오감도의 탄생]]'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