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감도 (문단 편집) == 작가의 말 ==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던 오감도가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된 직후 썼으나 발표되지 않은 글이다. 이 글은 [[박태원(소설가)|박태원]]이 쓴 「이상 편모」, 『조광』(1937. 6)에 포함되어 있다. >왜 미쳤다고들 그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보아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2천 점에서 30 점을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 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깜빡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이태준, 박태원 두 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준 데는 절한다. 철(鐵) ―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 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우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딴은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작가의 말에서 이상은 '[[용두사미|용대가리]]',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등 오감도에 대해 굉장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조기중단에 대한 실망과 2000편의 습작시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2000편인지 아니면 단순히 많은 숫자를 2000에 비유해 표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이상의 습작시는 대다수가 소실되었으며 60년대에 극소수의 자료만이 발굴되었다. 오감도 16편~30편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못한 것은 이상 문학 연구자들에게는 오늘날까지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