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감도 (문단 편집) ==== [[권영민#s-3]]의 해석 ==== 오감도라는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까마귀가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그림'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까마귀가 하늘을 날며 지상을 내려다 볼 때, 지상에는 많은 대상들이 펼쳐지게 된다. 이 시에서 '까마귀의 눈'으로 보이는 모든 대상을 제거하여 단순화하고 그중에 '도로'에서 '13인의 아해'가 '질주'하고 있다는 하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13인의 아해'는 모두가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무섭다'라고 진술한다. 모든 아해들이 '무섭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단순화된 패턴처럼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또한 이 특이한 행위의 패턴을 통해 아해들이 각각 스스로 무서운 존재로 변하기도 하고 무서워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서 '13인의 아해'가 누구인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시에 등장하는 '아해'는 실제하는 아이가 아닌 공중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왜소한 모습을 추상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사물은 실제보다 작게 보인다. 이런 시각과 거리의 감각을 염두에 두면 '아해'는 '아이들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게 틀림없다. '13'은 숫자 자체의 상징성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크게 의미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로를 질주하며 느끼는 공포의 실체가 무엇이며 그 대상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다시 읽어야만 그 시적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제1행에서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라는 진술을 통해 시적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열세 명의 아이가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그러나 제2행에서 괄호 속에 담긴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진술에 이르면 그 내용 속에 긴장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아해'가 '막다른 골목'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질주하다'라는 동사는 '빨리 달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주체의 행위로서의 '빨리 달리기'는 단순히 규정하면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 하는 상대방과의 경쟁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경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나 위협으로부터 멀리 도피하기 위해 달리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붙잡히지 않으려면 빨리 달려야 한다. 결국 '질주하다'라는 말은 끝없는 경쟁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첫 번째 연에서 제시하는 '13인의 아해의 질주'는 둘째 연과 셋째 연에서 그 이유와 동기가 드러난다. 첫째 연의 진술 내용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진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라는 진술을 놓고 다시 하나씩 '아해'들의 말과 행동을 설명해준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라는 문장과 동일한 내용의 진술을 '제1의아해'부터 '제13의아해'에 이르기까지 열세 번이나 반복하여 열거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 진술의 수사적 장치로 활용되는 열거와 진술의 반복은 진술되는 내용 자체의 의미 공간을 내적으로 확장하고 이를 강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단순한 반복과 열거를 통해 긴박감을 고조시키면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연의 끝에 붙어있는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라는 설명적 진술을 보면 앞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 '13인의 아해'가 각각 밝히고 있는 '무섭다'라는 서술의 의를 다시 [[메타|메타적]]으로 해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섭다'라는 형용사는 이 말이 서술하고 있는 주체가 '두려움이나 놀라움을 느낄 만큼 성질이나 기세 따위가 몹시 사납다'라는 뜻과 함께 '어떤 대상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마음이 불안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앞은 '무섭다'라는 말로, 뒤는 '무서워하다'라는 말로 각각 바꿀 수 있다. 결국 13인의 아해가 각각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더욱 발전시킨다면 13인의 아해는 그 속성이 동일하지 않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무서운 아해'이고, 나머지는 '무서워하는 아해'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넷째 연은 바로 이 같은 내용을 설명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4연의 시적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적 화자는 막다른 골목길을 질주하면서 무섭다 그러는 '13인의 아해'를 두고 하나둘씩 각각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로 구분하고 있다. '무섭다'라는 말이 결국 그 주체인 '아해'를 서술하기도 하고 대상화하기도 한다.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시에서 서술하는 무서운 존재가 누구인지, '아해'가 누구를 무서워하고 있는지 질문해보면 그 뜻이 드러난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해'이다.''' 결국 공포의 대상이 아해이고, 그 아해를 무서워하는 주체도 아해이다. 다시 말하자면 '무섭다고 하는 13인의 아해' 중에서 '무서운 아해'가 있고, 그 '무서운 아해'를 다른 '아해'가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셈이다. 마지막 연은 첫째 연에서 제시한 시적 상황의 반대 진술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뚫린 골목'이어도 좋고,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 진술은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떤 경우라도 실상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암시한다.''' [[오감도#s-1.1|시제1호]]에서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어는 '무섭다'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반복의 수사법으로 강조하고 있는 '무섭다'라는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나는 호랑이가 무섭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장에서 '무섭다'라는 형용사는 '호랑이'라는 대상을 놓고, '그 대상에 대하여 두려운 느낌이 있고 마음이 불안하다'라는 '나'의 마음 상태를 설명한다. '나'는 '호랑이'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났다'라는 문장을 보자. 이 문장에서 '무서운'이라는 말은 '호랑이'의 포악한 성질을 설명한다. '호랑이'가 '두려움이나 놀라움을 느낄 만큼 성질이나 기세 따위가 몹시 사납다'라는 뜻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섭다'라는 말은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포악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주체의 상태 자체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무섭다'라는 말의 의미를 놓고 보면 [[오감도#s-1.1|시제1호]]에서 그리고자 하는 불안과 공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정도 분명해진다. '무섭다'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해'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괴물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 하는 다른 어떤 대상이 아니다. '13인의 아해' 중에는 아주 무서운 '아해'가 있다. 그러므로 다른 '아해'는 그 무서운 '아해'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확대 해석하면, '''13인의 아해는 서로가 서로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13인의 아해'가 서로를 무서워하는 까닭은 시에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도로를 질주하면서 경쟁하고 있는 '13인의 아해'를 보면 이들이 서로 분열 대립하여 경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연은 이 같은 결론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13인의 아해'가 막다른 골목을 질주하든 뚫린 길을 질주하지 않든 자신을 무서운 존재로 내세우기도 하고 상대방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상호 대립과 갈등과 불신이 '아해'의 공포를 조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감도#s-1.1|시제1호]]에서 '13'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따지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상(작가)|이상]] 자신도 '13'이라는 숫자 자체의 의미에 덧붙여진 다양한 미신을 주목했기에 이 시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여기서 '13'에 붙어 있는 '종말의 의미'를 아무리 강조하여도 시적 의미의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13'이라는 숫자를 '조선 13도'로 환원해보거나 이상과 함께 [[서울공업고등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던 '동기생 13명'의 숫자와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굳이 설명이 필요하다면, [[오감도#s-1.1|시제1호]]에서 그리고 있는 '13인의 아해'가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이 시가 까마귀처럼 공중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오감도의 관점에서 써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이 '아해'처럼 보인다는 것은 당연하다. '13'은 종말의 숫자이며 인간 존재의 위기를 암시한다.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실체를 '무섭다'라는 하나의 형용사로 묘사한 것과도 그 성격이 일맥상통한다. [[오감도#s-1.1|시제1호]]의 참주제는 공중에 떠 있는 까마귀의 시각을 빌려 인간이 인간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게 된 인간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지적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강조하고 있는 '아해'들의 '무서움'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대립, 갈등, 분열, 질시와 거기서 비롯되는 상호 불신, 공포, 불안의 상태를 단순화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오감도#s-1.1|시제1호]]에서 암시하고 있는 인간의 불안과 공포는 개인의식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20세기 문명의 특징인 끝없는 경쟁과 속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느끼는 공포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속도와 경쟁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대립과 갈등, 전쟁과 파괴 등의 비인간적 행위가 인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속도와 경쟁을 부추겨온 물질문명이 인간의 상호 불신과 대립, 적대감과 경쟁의식, 불안과 공포 등을 더욱 부추기는 것도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