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대십국시대 (문단 편집) == 십국 == [include(틀:오대십국시대 십국/왕조)] ||[[파일:attachment/5Empires_and_10Kingdoms-00910.jpg|width=400]][br]▲910년대 9국 병립도 || 한편 십국은 오대의 왕조들처럼 차례차례 건국되지 않고,[* 다만 오대의 왕조도 후량과 후당은 동시기에 존재하기도 했다.]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세워졌으며 그 세력 규모도 천차만별이었다. 심지어 오가 남당으로 교체된 것처럼 이전의 왕국을 멸망시킨 다음 그 자리에 새로 건국한 경우까지 있어서 십국이 전부 동시에 존재하는 일은 없었다. 그 외에 전촉은 후당에게 망했고 민, 초는 남당에게 망했다. 여기에 오월처럼 외왕내제를 택하는 국가가 있었다. 오월의 군주는 다섯명인데 이 중에 처음 3대는 황제를 칭하고 묘호를 정했으며 아예 초대황제의 경우 능호까지 있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오대의 제후국을 자처했다. 한편 남당처럼 황제를 칭했다가 제후국으로 쭈그러 앉은 경우도 있다. 밑에 나오지만 남당은 후주 세종 이후 후주-송에게 굽신거리는 국가로 전락했는데 이때 아예 국호까지 강남국으로 바꾸었다. 십국 중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당나라가 멸망하기도 전에 이미 건국된 초(楚, 897년 ~ 951년)와 오(吳, 904년 ~ 937년)와 오월(吳越, 904년 ~ 978년)이었다. 십국 중 가장 나중에 세워진 왕조는 오대 왕조 중 하나인 후한의 황족이 세운 북한으로 951년에 건국되었다. 이들은 멸망 시기도 제각각이어서 가장 빨리 망한 나라는 925년 후당에 병합당해 건국 18년 만에 망한 전촉(前蜀)이었고 가장 나중에 망한 나라는 979년에 망한 북한이었다.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은 남방에 건국되었다. 이 중 오월은 지금의 [[저장성]](절강성) 지역에서 존재했다. 존재 기간(75년)도 가장 길었고, 세수 인구수가 최대 55만에 달했다. [[후삼국시대]]에 [[후백제]], [[고려]]와도 교역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남당이 망하고 송과 국경이 접하자 항복했다. 후기의 남당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 회수 이남의 초와 민을 멸망, 합병시키며 남방의 패자를 꿈꿨으나 후주 세종의 공격으로 많은 땅을 잃고 후주, 송에게 굽신대며 살아가는 소국으로 전락했고 송나라 하에서는 제후국으로 공을 자처했다. 그러다가 [[송태조]]의 공격으로 남당의 후주 [[이욱]]이 항복하면서 멸망. [clearfix] ||[[파일:attachment/5Empires_and_10Kingdoms-00930.jpg|width=420&height=430]][br]▲930년대 9국 병립도 ||[[파일:attachment/5Empires_and_10Kingdoms-00950.jpg|width=420&height=430]][br]▲950년대 8국 병립도 || [clearfix] 남방은 촉과 남당을 중심으로 문화와 시서가 발달했다. 촉에서는 화조화의 시조인 황전과 문필가 모문석, 구양형이 유명했고, 남당에서는 한희재 야연도를 그린 고광중, 화조화의 시조 서희, 하북 산수의 창시자인 형호, 강남 산수의 동원, 문필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서현, 문사 한희재 등이 있었다. 남당 후주(3대) [[이욱]]은 [[송휘종]]과 함께 예술가 기질이 다분하나 그 때문에 나라를 망친 인물이지만, 능력만큼은 뒷시대인 송의 4대 문학가에 들어가는 인물. [[http://www.bongkim.com/bongkim/skin/board/etopia_webzine/print.php?bo_table=b03_01&wr_id=99|#]] 십국을 건국 시점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편의상, 왕조의 국성(國姓)과 수도 소재지, 그리고 각 나라를 멸망시킨 [[국가]]도 함께 기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