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리엔탈리즘 (문단 편집) == 설명 == [[에드워드 사이드]]는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아랍계 기독교인|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복잡한 정체성이 서구인들의 편협함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드러내는 언설들을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정리했다. 저서의 핵심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지식은 현실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동양'의 여러 사회가 본질적으로 서로 닮아있으며 '서구'의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선험적 지식이 '동양'을 '서양'의 안티테제로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관계에는 힘이 작용한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우선 18세기 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본격화된 ‘학문적인 의미’가 있다. 이는 동양을 연구하고 정의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두 번째 의미는 서양이 동양을 자신과 구별하는 인식이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곧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 >-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역, 교보문고, 1991, 16p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페르시아와 자신들을 대비한 이래로 점차 확장되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의미는 독립적이지 않으며, ‘통제된 교류’의 과정을 통해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근대적인 의미의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낸다. 즉, 예를 들어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샤토브리앙]]과 같은 여행기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동양에 대한 경험과 심미적인 인식들은 레인으로 대표되는 동양학자들의 과학적 연구 결과의 권위에 기대어 ‘공적인’ 하나의 담론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한다. >'''“곧 유럽인의 동양 거주와 그 기록은... 오리엔탈리스트(동양학자)가 그 위에 더욱 많은 학문적 관찰과 서술을 가하여 조립하고 기초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 위의 책, 277p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양은 동양을 '''비이성적, 전제적, 비도덕적이고 불결하며 정체적인 존재로 정의하며,''' 각종 생산물들을 통해 이를 '''텍스트화한다.''' 이러한 행위가 진행되고 또 그 결과물이 권위를 얻을 수 있던 까닭은 서양이 18세기 당시 동양과의 불균형적 관계 속에서 식민 지배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허구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국주의 서양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다양한 층위의 권력 교환 과정에 융합하여 실존하는 '''담론'''이며[* 임시연,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년, 40p~41p], (세 번째 의미인) '''식민 지배 체제를 뒷받침하는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 16~18p] 종합해보면 근대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주의 체계에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 위의 책, 18p]이다.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양은 타자인 동양이라는 대상을 형성한 후 그들의 본질적인 ‘열등한’ 속성을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을 이에 대비하여 '진보적이고 우월한' 속성과 주체성을 획득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이분적인 의식은 서양이 동양과의 관계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수동적인 동양을 지배하며 그 열등한 문명을 개량해야 한다는 [[백인의 의무|지배의 당위성과 도덕적 사명감]]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흔히 말하는 '[[동양]]'을 깔보는 선입견이나 풍조가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동양이라는 범주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전혀 상관이 없는 수많은 제국을 서구의 입장에서 타자화해 동일한 담론으로 묶는 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기본 전제다. 따라서 사이드의 이 저서가 출간된 이후로는 '오리엔트'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오리엔트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장된 것은 아니며, 예전에 쓰던 명칭인 중동(Middle East)은 '지중해의 입장이 담겨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의 국가들을 '오리엔트'라고 부르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렸다. 현재에 와서는 [[아시아]]라든지 [[동양]] 같은 단어가 거의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즉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등을 비난하는 용어가 아니며 서구에서 동양을 인식하고 정의하고 묘사하고 연구하는 그 담론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학문]], [[희곡]], [[회화]], [[문학]] 등 서구에서 생성된 담론 속 '서구가 동양을 인식하는 방식'을 분석하고자 만들어진 용어다. 그러므로 비서구권 나라의 문화를 깔보는 서양인에게 '이런 오리엔탈리스트!'라고 일갈하는 식으로 써서는 안 된다. 실제로 저런 상황을 마주하면 차라리 Racist(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기저에는 문명화되고 우월한 서양보다 열등한 동양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마련인 것이 현실이다. 예외라면 [[불교]], [[힌두교]]나 그에 기반한 문화들은 평화적이기에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사회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나 몇몇 [[공동체주의]] 성향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동양권에는 서구권에서 잃어버린 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등의 주장들이 있다. 그런데 이 또힌 '포지티브 오리엔탈리즘'의 예로 볼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이라고 지적받는 부정적 인식들 사이에도 대조적인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동양인들은 비굴하고 소극적이며 겁이 많다." ↔ "동양인들은 잔인하고 무례하며 사기를 잘 친다." 와 같이 모순된 편견도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술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중동과 인도를 제외한 비서구권에 대한 논의는 없으나, 이후에 비서구권을 대하는 근대 서구권의 시각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짧게는 시누아즈리나 튀르크리부터 길게는 오리엔트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인식까지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이질적인 것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대상화이다. 근대 서구문명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나머지, 비서구권도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스스로 투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 언설로는 소위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에서 외친 구호인 '근대로의 초극(近代への超克: 동양의 정신문명으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을 극복하자는 의미)'이 있다. 서구권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작품에 따라 상당히 묘하게 녹아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동양의 신비성이나 이념을 강조하는 형태부터, 직접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나 때로는 중국과 일본풍이 뒤섞인 닌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아시아 나라들의 문화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한다. [[한국인]]이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문화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나마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같은 네덜란드 문화권이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같은 북게르만 문화권이기에 참작의 여지는 있다. 물론 이렇게 구별하는 것도 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얘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러한 성향은 만화에도 등장한다. 서구권에서는 영어식 이름이나 지명, 소재가 등장하는 만화 못지 않게 동양풍 배경과 소재가 등장하는 만화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양풍 복장과 소재를 이용하는 [[드래곤볼]], [[나루토]], [[블리치]] 등이 이 오리엔탈리즘과 맞아떨어져서 영미권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리엔탈리즘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계열의 학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문제이지만 이론의 검토 대상이 너무 방대하다 보니 사실문제를 정확히 검토하지 않고 논증에 활용하는 일이 있어 설득력을 잃기도 한다. 동명의 저서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교보문고]]에서 출판했고, 번역자는 [[영남대학교]] 박홍규 교수다. 그런데 번역자가 법학자다 보니 사이드가 방대하게 인용한 문예 작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각주를 통한 보충이 부실하다. 반면에 역주 및 역자의 후기에는 번역자 본인의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다가 오히려 [[옥시덴탈리즘]] 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오리엔탈리즘과는 관련이 없는 개고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게다가 번역된 문장이 정제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